2025년 1월호 역사 대홍수로 인류를 없앤 제우스와 살아남은 데우칼리온 부부

2025.01.08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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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로 인류를 없앤 제우스와

살아남은 데우칼리온 부부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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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처음 만들어져 살았던 때를 ‘금의 시대’라고 한다.


금의 시대에는 여름, 가을, 겨울이 없고 봄만 있었다. 인간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땅은 스스로 알아서 곡식을 길러 주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늘 식량이 넘쳐 났으며, 서로 싸우는 일 없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제우스가 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제우스는 따뜻한 봄뿐만 아니라 더운 여름, 선선한 가을, 추운 겨울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인간들은 더위와 추위를 피해 집을 지어 살았고 가축을 길러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인간들은 그럭저럭 살만했다.


‘은의 시대’에 이어 ‘청동의 시대’가 왔다. 인간들은 청동으로 무기를 만들었다. 서로를 헐뜯고 미워했으며 무기를 들고 맞서 싸웠다. 그러나 뒤에 올 ‘철의 시대’에 비하면 그리 악한 시대가 아니었다.


‘청동의 시대’가 끝나자 ‘영웅의 시대’에 이어 ‘철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대에 인간들은 몹시 악해져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도둑질을 했다. 그들은 철을 녹여 무기를 만들어 형제들끼리 싸웠으며, 인간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알아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제우스는 인간 세상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세상 나들이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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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에는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리는 라이카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라이카온은 제우스에게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쳤는데, 제우스는 그의 야만적인 행위에 화가 나서 그의 집을 불태우고 그를 이리로 만들었다.


제우스는 인간 세상에 내려오자 라이카온의 아들들이 생각나서 그들의 집을 찾아갔다. 라이 카온에게는 스물두 명의 아들이 있어 함께 살고 있었다.


제우스는 허름한 옷을 입고 나그네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대문을 두드렸다.


“먼 길을 가는 나그네인데, 날이 저물어 하룻밤 쉬어갔으면 합니다. 잠자리와 먹을 것을 주십시오.”


“들어오시지요.”


라이카온의 아들들은 제우스를 집 안으로 들였다. 그러고는 그를 위해 방 하나를 내주고 저녁상을 차려 왔다. 저녁상에는 국이 올라왔는데, 그들 형제인 닉티무스의 내장에 염소, 양의 내장을 넣어 끓인 국이었다.


제우스는 금세 그 사실을 알아채고 저녁상을 뒤엎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너희 놈들이 사람이냐? 자기 형제를 죽여 그 내장으로 국을 끓여? 어쩜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느냐?”


제우스는 그 자리에서 라이카온의 아들들을 이리로 만들고 죽은 닉티무스를 살려냈다.


그는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인간들이 얼마나 악하고 잔인해졌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인간들은 신들을 공경할 줄 몰랐으며 틈만 나면 서로를 헐뜯고 싸웠다. 도둑질과 살인과 전쟁이 단 하루도 끊이지 않았다.


‘인간들의 행실이 소문보다 훨씬 나쁘구나. 세상이 온통 악으로 물들어 있어.’


제우스는 올림포스로 돌아오자마자 신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내가 방금 인간 세상을 둘러보고 왔는데 착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모두 악한 사람들뿐이었소. 온갖 범죄와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이었소. 그래서 나는 이런 악한 인간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소?”


“죄 많은 인간들을 저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모두 없애 버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더는 살려 둘 수 없습니다.”


신들은 모두 제우스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러자 제우스가 신들에게 물었다.


“그럼 인간들을 어떤 방법으로 없애는 게 좋겠소?”


“제 생각에는 인간 세상에 벼락을 내려 온 땅을 불태워 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불기둥이 치솟아 이곳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큰 홍수를 지게 하여 인간들을 물로 없애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아무리 큰 홍수가 나도 이곳까지 물이 차오를 수는 없으니까요.”


한 신이 이런 의견을 내놓자 제우스는 무릎을 쳤다.


“오, 그 방법이 좋겠소. 인간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도록 하지.”


제우스는 바람과 비의 신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인간 세상에 많은 비를 내리게 하라고 명령했다.


한편 제우스의 뜻을 알게 된 프로메테우스는 서둘러 자신의 아들인 데우칼리온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곧 인간 세상에 큰 홍수가 날 것이다. 너는 방주를 만들어 아내와 더불어 이 배에 올라타 홍수를 피하도록 하라.”


데우칼리온은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급히 방주를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자 아내 퓌라와 더불어 배에 몸을 실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몇 날며칠 쉬지 않고 비가 내리자 온 세상이 물에 잠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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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살아남은 것은 배에 타고 있는데우칼리온 부부뿐이었다. 그밖에 모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두 사람은 쉬지 않고 배를 저었다. 그리하여 파르나수스 산꼭대기에 닿았다. 다행히 파르나수스 산꼭대기만은 물에 잠겨 있지 않았다.


배에서 내린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제우스에게 기도를 드렸다.


“제우스님, 저희 인간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데우칼리온 부부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죄악에 물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왔으며 신들을 잘 섬겼다. 제우스는 이들만은 살려 두고 싶었다. 그래서 바람과 비의 신들에게 명령하여 비를 그치게 하고 물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하여 땅은 제 모습을 드러냈으며 오랜만에 해가 떠서 온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세상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넓은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구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오.”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어요? 제우스님에게 함께 기도해요.”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앉아 제우스에게 다시 기도를 드렸다.


“제우스님, 저희들을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 둘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저희들에게 살길을 열어 주십시오.”


제우스는 데우칼리온 부부의 기도를 듣고 헤르메스를 보냈다.


헤르메스는 그들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너희들의 기도를 들어 주마. 이곳을 떠난 뒤 머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너희들 어머니 뼈를 등뒤로 던져라.”


헤르메스는 이 말을 남기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은 이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데우칼리온이 먼저입을 열었다.


“아, 이제 알겠다. 우리 인간이 흙으로 빚어졌으니 대지는 우리 어머니가 아니겠소? 그리고 어머니 뼈는 대지에 있는 돌멩이를 뜻하고….”


“듣고 보니 그렇군요.”


길바닥에는 돌멩이들이 널려 있었다.


데우칼리온 부부는 돌멩이를 주워 등 뒤로 던졌다. 그러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돌멩이들이 점점 커지면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부부는 자꾸만 돌멩이를 등 뒤로 던졌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멩이는 남자가 되고, 퓌라가 던진 돌멩이는 여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곳에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제우스가 대홍수로 인류를 없앤 뒤 이 세상에는 이렇게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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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 <데우칼리온과 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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