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호 역사 대한민국 축구,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쾌거
대한민국 축구,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쾌거
손흥민이 골 가장 많이 넣고, 황인범이 가장 많이 뛰었다
내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본선 열려… 또다시 ‘대~한민국’
글 전경우 스포츠저널리즘 박사
2010년 6월 17일(한국시간)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 월드컵 B조 2번째 경기에서 한국의 허정무 감독과 아르헨티나
마라도나 감독(오른쪽)이 지휘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대한민국 축구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한국은 2026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등 북중미 16개 도시에 열리는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다.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40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본선에 올랐다.
이번에는 예선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며 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월드컵 본선 연속 11회 진출은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이고 전 세계에서 6번째 달성한 쾌거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축구 팬들이 많다. 당시 한국은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라 그 기쁨이 어느 때보다 컸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와 맞붙었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한국 선수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고, 축구 황제 디에고 마라도나를 보유한 아르헨티나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승부는 뻔했다. 결국 한국은 1-3으로 졌고,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날 경기는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걷어차는 사진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허정무가 공중차기로 마라도나의 허벅지를 가격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마라도나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뒹굴었고, 아르헨티나 선수들과 심판이 허정무를 향해 달려왔다. 허정무는 심판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공을 차려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심판은 옐로우 카드를 내밀었다.
아르헨티나 언론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태권도 축구’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한국 축구 팬들은 허정무를 칭찬했다. 허정무의 태클에서 승리에 대한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선수와 상대하면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플레이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1986년 6월 2일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한국의
허정무(왼쪽)가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태클로
저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이 장면을 두고 ‘태권도 축구’
라고 비아냥댔다.(출처: 연합뉴스)
훗날 허정무 감독은 당시 마라도나를 상대했던 것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정말 까다로운 선수였다. 수비수의 움직임을 역으로 이용해 중심을 무너뜨리는 기술이 좋았고, 패스는 구석구석 가야 할 곳으로 어김없이 정확히 보냈다. 키는 작지만 생고무같이 통통 튀었다. 세계적인 선수는 다르다고 느꼈고 이런 선수가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저로서도 많은 공부가 됐다.”
이 경기에서 박창선은 한국 월드컵 본선 1호골을 터트렸다. 그는 골을 넣은 뒤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던 차범근도 합류해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의 이름 없는 변방 국가에 불과했다. 해외에서는 ‘코리아’라는 이름도 몰랐고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김치 냄새가 난다며 싫어했고 대놓고 무시했다. 한국 선수들은 해외 원정을 갈 때나 불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국민이었다. 해외에 나가더라도 늘 자신감 없는 표정이었다.
허정무와 마라도나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때 각각 한국과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조별리그 상대 팀으로 만났었다. 당시에도 두 사람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들은 2017년 6월 14일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허정무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수원 화성행궁 앞광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코리아 2017 본선 조 추첨 행사 사전 이벤트에서 마라도나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마라도나는 풋살게임 등 이벤트에 참가한 뒤 취재진으로 부터 사진 한 장을 받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허정무의 태클에 걸려 넘어지는 사진이었다. 마라도나는 밝은 표정으로 “모든 부상 장면은 다 기억난다. 이 사진도 마찬가지다. 큰 대회에서 일어났던 일이라 기억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마라도나는 2020년 11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축구 영웅이 떠나면서 전 세계 축구 팬들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하지만 축구 황제 리오넬 메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가 2022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아르헨티나는 36년 만에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지난 6월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 한국과 쿠웨이트의 경기. 붉은악마 응원단이 ‘WE대한’이라고
적힌 카드섹션을 선보이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이렇게 월드컵과 인연이 깊은 한국 축구가 다시 역사를 만들어나간다.
홍명보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은 지난 6월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0차전에서 쿠웨이트를 4-0으로 대파하며 월드컵 본선을 향한 여정을 마쳤다.
6월 6일 이라크와의 9차전 원정 경기 승리로 11회 연속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은 홍명보호는 안방에서 쿠웨이트를 상대로 골 잔치를 벌이며 자축했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오현규(헹크) 등의 활약으로 4-0 승리를 거둔 대표팀 선수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서 팬들과 소통했다.
경기 후 팬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강인은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할 테니 선수들뿐 아니라 코칭 스태프분들도 꼭 많이 응원해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팬들도 한마음으로 한국 축구가 이뤄낸 특별한 성과를 축하했다. ‘붉은악마’의 트럼펫 연주에 따라 관중들이 응원가를 부르며 입장하는 선수단을 맞았다. 전반 11분이 넘어가자 카드섹션이 시작됐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한 면을 차지하는 응원석은 순식간에 ‘WE 대한’이라는 문구로 바뀌었다.
행사 진행자가 “우리가 누구냐”고 큰 소리로 묻자, 팬들은 “대~한민국”이라고 외쳤다. 벤치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관전하던 손흥민의 얼굴이 전반 도중 전광판에 포착되자 팬들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팬들의 환호성에 손흥민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지난 6월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 한국과 쿠웨이트의 경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 대표팀의 손흥민(왼쪽)과 이재성이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한국 축구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눈부신 성취를 이뤄낸 데에는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린 주장 손흥민(토트넘)의 활약이 있었다. 가장 많은 시간 그라운드를 누빈 황인범(페예노르트)의 헌신도 있었다.
이번 예선에서 한국 대표팀 중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2차 예선에서 7골,3차 예선에서 3골을 합해 총 10골을 터뜨렸다. 특히 지난해 11월 팔레스타인전에서 A매치 51호 골을 기록하면서 황선홍 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을 제치고 남자 A매치 최다 득점 단독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손흥민 다음으로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이재성(마인츠)이 2·3차 예선을 통틀어 나란히 5골을 넣었고, 오현규(헹크)와 황희찬(울버햄프턴)이 4골씩 보탰다. 배준호(스토크시티), 오세훈(마치다젤비아), 주민규(대전)는 2골씩 터뜨렸다.
대표팀의 ‘중원 사령관’ 황인범은 가장 많은 시간 뛰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앞장섰다. 황인범은 2·3차 예선에서 1397분을 뛰었다. 한국이 치른 예선 16경기 중 부상으로 뛰지 못한 지난 3월 월드컵 3차 예선 오만과의 7차전을 제외한 15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황인범 다음으로는 조현우(울산·1297분), 이강인(1235분), 이재성(1185분), 손흥민(1165분), 설영우(즈베즈다·1138분)가 뒤를 이었다. 3차 예선만 따지면 조현우
(905분), 설영우(902분), 황인범(855분), 이강인(797분),이재성(784분) 순이었다. 손흥민은 부상으로 3경기를 결장한 탓에 585분을 소화했다.
지난 6월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최종전 한국과 쿠웨이트의 경기.
후반전 교체된 손흥민(오른쪽)이 황인범으로부터 주장 완장을 전달받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역대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한 대한민국 선수는 3명이다. 안정환, 박지성, 손흥민이 3골로 공동 1위다. 안정환은 2002년 2골, 2006년 1골, 손흥민은 2014년 1
골, 2018년 2골로 두 대회 연속 득점을 기록했다. 박지성은 2002, 2006, 2010 대회에서 각각 1골씩 득점하며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3 대회 연속 득점을 일궜다.
손흥민은 내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된다. 손흥민은 내년 월드컵이 마지막 출전 월드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 선수로 다시 월드컵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로 월드컵 본선에 가장 많이 출전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4개 월드컵에 연속 출전해 16경기를 소화했다. 아시아 전체에서 1위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튀르키예와 3-4위전을 치렀다. 내년 북중미 월드컵에 선수가 아닌 사령탑으로 출전하는 홍명보 감독이 한국 축구사에 또 어떤 족적을 남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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