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인물 임상규 안산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
임상규 안산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
“글로컬 시대의 국악
(global+local)
상생으로 발전해야”
글 이예진 사진제공 임상규 안산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
지난 5월 15일 청계광장에서 전국 국악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있었다. ‘전 국악인 문화제’로 진행된 그 자리는 교육부가 추진 중인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국악의 교육이 축소된다는 소식에 반발한 전국 국악인이 모인 것이었다. 교육부가 지난 4월에 공개한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의 ‘성취 기준’ 항목에 국악 관련 내용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학교의 수업, 평가와 함께 교과서 편찬의 가이드라인이 되는데 여기서 국악이 빠지는 것은 국악의 내용이 축소되는 것과 같다.
전국악인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한국국악교육연구학회는 ‘전 국악인 문화제’를 통해 목소리를 모았고 이번 행사는 소리꾼 이자람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경기민요 보유자 이춘희,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문재숙, 트로트 가수 송가인 등 국악계 30여명과 시민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숙 가야금 명인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 와중에도 산업화와 서구화의 와중에도 꿋꿋하게 지켜온 국악”이라며 “국악을 더 확대해 K-문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악인 출신 트로트 가수 송가인 역시 “조금이라도 인기가 있을 때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우리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은 우리 전통 문화인데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어디서 배우겠나. 많은 사람이 제 노래를 듣고 우시고 ‘목소리에 한이 서려있다’고 하시는데 이는 제가 트로트만 한 것이 아니라 판소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 안산시립국악단 제44회 정기연주회 ‘세계음악시리즈’ 공연
이처럼 국악계가 한 자리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드문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서 국악계의 요구는 명확했다. 더이상 국악 교육이 퇴보되지 않는 것. 이에 교육부는 국악계의 요구에 “국악 교육에 대한 비중을 예전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응답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이 불거진 원인은 국악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리, 우리의 음악이지만 대중음악, 서양음악 클래식에 비교해 대중들의 관심이 적다. 그래서 이러한 우리의 소리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데 노력하고 있는 인물을 만났다. 바로 안산시립국악단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는 임상규 상임지휘자다.
“국악의 이해, 교사부터 양성돼야”
임상규 상임지휘자가 안산시립국악단을 이끌기 시작한 것은 2009년 9월 21일부터다. 벌써 13년째 안산시립국악단을 이끌고 있는 그는 국악을 현대화시켜 대중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국악은 교육에서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국악계가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부분이
기도 했다.
국악계는 국악이 흔들리는 근본 원인으로 음악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의 교사 양성 과정을 꼽는다. 전국의 교대에서 국악 관련 필수과목 시수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교대에서 국악 관련 필수과목 시수는 평균 2.11시간에 불과하다. 4년 총 8학기 중 1학기 1과목 정도의 수업만 들으면 된다는 의미다.
2019년 안산시립국악단 제57회 정기연주회 ‘월드오케스트라’ 공연
또 중고등학교의 음악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도 비슷한 상황이다. 전국 사범대 음악교육과에 국악 전공 전임교수가 있는 학교는 교원대, 공주대뿐이다. 이에 대해 국악계는 “제대로 국악을 배우지 않고 현장에 나오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국악을 알려줄 수 있겠냐”고 성토한다.
이에 임상규 상임지휘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국악을 보급하는 차원으로 ‘경기교사국악관현악단’을 만들어 이끌고 있다. 경기 남부와 북부를 나눠 만들어진 이 관현악단은 국악에 관심 있는 초·중·고등교사들을 모아 악기를 알려주고 정기연주회도 열고 있다. 경기교사국악관현악단의 지휘도 맡고 있는 그는 “학교 선생님들이 국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현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도시에 보면 국악단이 있다. 그 국악단의 문을 열어서 가까운 선생님들이 배울 수 있게 하면 조금 더 효과적으로 선생님들이 국악을 배우고 학생들에게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학생들에게도 국악을 알리기 위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있기 전에는 초등학교에 찾아가 전통 악기를 가르쳐주고 공연을 해주는 ‘찾아가는 국악교실 음악회’를 진행했다. 그는 “주위에 둘러보면 피아노 학원은 많지만 전통 악기를 알려주는 곳은 많지 않다”면서 “우리가 안산 내 초등학교를 찾아가면서 음악회를 진행한지 20년이 넘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우리의 음악과 악기를 보여주고 학생들은 듣고 보고 즐기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 말살 정책에도 살아남은 국악
“1900년대 아이돌은 누구였을까요? 판소리 하는 소리꾼들이었어요. 당시에는 판 깔아놓고 판소리를 하면 사람들이 왔어요. 거기서 소리를 들으면서 울고 웃고 그랬죠. 그때는 소리 잘하는 사람은 말 타고 다니고 여자는 가마 타고 다녔어요.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들이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과 같죠.”
지금은 국악의 인기가 높지 않지만 과거에는 국악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는 문화 말살 정책을 시행했고 이때 대다수의 국악 단체는 해체됐다. 이후 해방을 맞이하면서 국악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이미 서양에서 들어온 클래식이나 대중음악을 이기기란 힘들었다. 이에 대해 임 상임지휘자는 고무신 장수에 비유했다.
“과거 고무신 장수가 고무신을 팔아서 대박이 났어요. 하지만 그 똑같은 제품을 지금 판매한다면 똑같이 대박이 날까요? 시대가 바뀌면서 음악도 바뀌어요. 그게 현실이죠.”
결국 시대와 함께 문화가 바뀐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의 문화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문화에 있어서 좋고 나쁨은 없다고. 임 상임지휘자는 “음악, 체육 등 나라의 문화는 그 나라의 삶을 지탱해 온 힘”이라며 “국악이 힘겹게 지금까지 이어온 것을 함께 알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代)를 이은 국악 예술의 정신
시대가 바뀌면 음악도 바뀌어
문화는 나라를 지탱한 힘
그가 이렇게 국악을 아끼고 대중들에게 알려온 것에는 그의 신념과 함께 핏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핏줄은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의 집안은 국악으로 하나가 돼 있다.그의 외고조부는 ‘신무용의 선구자’라 불리는 한성준 선생이다. 한성준 선생은 당대의 명고수(名鼓手)이면서 무용가로 활동한 예인(藝人)으로 1930년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고 1934년 조선무용연구소를 창설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불구하고 마당에서 놀았던 민속춤을 무대 위로 이끌었으며 일본 동경 등 주요 도시에 순회공연을 하면서 우리의 전통 무용을 소개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활동한 안무가 최승희 역시 한성준 선생에게 전통무용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학춤에 뛰어났던 그는 <태평무(太平舞)>와 <학무(鶴舞)>를 창작했으며 승무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데 공헌했다. 그의 승무는 손녀인 한영숙에게 이어졌다. 한영숙은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現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이후 1971년에는 제40호 학무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특히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폐막식에서 살풀이춤을 선보이며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임 상임지휘자의 형제들도 나란히 국악을전공했다. 그는 피리 전공이었으나 지휘를 공부하면서 국악단을 이끄는 지휘자가 됐다. 그의 첫째 동생인 임정희 교수는 세종대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고 있고 둘째 동생은 같은 안산시립국악단에서 아쟁 연주자로 함께하고 있다.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