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호 인물 “관동대지진 대학살, 제노사이드로 인정받아야 할 사건”
“관동대지진 대학살,
제노사이드로 인정받아야 할 사건”
집단학살
글 김현진 사진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1923년 9월 1일 발생된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열차 선로가 무너진 모습. 당시 지진의 위력이 어떠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다.
정성길(81) 기록사진연구가는 우리의 끊어진 역사를 이어주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회복한다는 심정으로 40여 년간 전 세계를 돌며 자신의 사재를 다 털어 근현대사 기록사진만 7만 점을 모았다. 그가 모은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나 역사교과서에서 나오는 근현대사 사진에서 약 70%의 비중으로 사용될 정도로 눈으로 직접 역사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 연구가가 모은 사진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사진들이 많은데, 특히 1890년대의 광화문 사진과 1910년 전후 숭례문 사진은 훼손된 광화문과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을 원형 복원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됐다. 뿐만 아니라 왜곡된 문화재와 역사를 바로 잡는데도 입증사진을 내밀어 입바른 소리를 내왔다.
기록사진을 통한 입증으로 아직도 바로 잡아야 할 문화재와 역사가 산적해 있으나 그중에서도 그가 생을 마치기 전 반드시 꼭 해결하고 싶은 오랜 숙원이 바로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이다.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가 발행한 서적
<사진으로 본 관동대지진의 실체>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99년 전 관동대지진 사건은 무엇
관동대지진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23년 9월 1일 일본 수도 도쿄를 포함한 관동지역은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대부분 폐허가 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당시 이 지진은 일본의 경제가 좋지 않은 공황상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민심의 추락은 상당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곧바로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지진으로 인한 경제파탄으로 울분이 터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을 조선인으로 돌렸다.
일본 계엄사령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계엄사령부가 언론에 흘린 거짓정보는 일본 민심을 자극했고 무전과 전단, 포스터 등을 이용해 유언비어를 유포시킴으로써 관동지역 일대에 조선인들이 숨을 곳이 없도록 했다. 심지어 형무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까지도 다 내보내 자경단을 구성하도록 해 대학살을 자행하게끔 부추겼다. 인간사냥을 자행하는 자경단이 극에 달해 무고한 일본인까지 죽이기도 하는
등 전국적으로 여파가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계엄사령부는 계엄 발효 닷새 후에야 자경단 활동을 자제시킨다. 그로 인해 관동대지진 학살은 중단됐지만, 많은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됐다.
1923년 9월 1일 발행한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도시 건물 대부분이 무너진 모습
마구잡이 조선인 사냥에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일부 죽기도 했으나 우리 선조들의 피해는 엄청났다. 이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은 독립신문에서는 6000여 명으로 발표됐으나 독일 문헌에서는 2만 3000명 이상으로 기록됐다. 곧 일본의 자작극으로 인해 우리 선조들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이다.
일본 경시청에선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소문 때문에 직접 각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우물을 검사하며 단서를 찾고자 했으나 그 어디에도 우물에 독을 탄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당시 일부 의식 있는 일본 언론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잘못된 유언비어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무고하게 학살됐다고 기사와 사설 등으로 내보냈다. 이에 일본 교과서에도 명백히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을 기술해왔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괴소문 때문에 경시청 직원들이 우물을 검사하며 소독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우물에 독을 탄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의식 있는 일본 언론들이 이 같은 사실을 기사와 사설 등으로 보도했다.
우리의 무관심에 자꾸만 왜곡하며 부인하는 일본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일본은 학살이라는 표현을 ‘살해’라고 수정한 데 이어 ‘희생’이라고 변경하더니 급기야 2013년 초에는 아베 신조 정권 주도로 교과서에서 그 내용을 삭제하는 등 일본은 자신의 선조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미화 혹은 왜곡시켜 왔다. 자신의 선조들이 당시 많은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간 교육해 왔음에도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당시 아베 정권의 움직임에 정 연구가는 언론을 통해 관동대지진 학살 입증 사진 몇 점을 내밀며 맞서 싸웠다. 그는 일본 교수들로부터 이메일 등을 통해 많은 공격을 받았고, 정확한 입증으로 방어하며 싸웠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우리나라였다. 국내에서도 그 사진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진과 다르다며 사실이 맞냐고 항의하는 일도 비일비재해 정 연구가를 힘들게 했다.
정 연구가는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국사 교과서에 난징대학살은 언급하면서도 지금껏 관동대지진에 대한 언급을 거의 안하고 있다. 관동대학살을 입증할 많은 사진을 내가 갖고 있음에도 정부가 일본 눈치를 너무 보고 정부 차원의 규명작업에 나서지 않고 있다. 또 대기업들도 일본 자금과 많이 연관되다 보니 나서지도 않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2014년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고 한탄했다.
일본 고등형사가 학살로 죽은 여성의 시신을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지진과는 상관없는 해안가 뚝길에서 학살과 만
행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진이다. 지진 속에서도 그들의 만행이 드러났고, 여성 시신에 다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그들
의 만행이 드러난다.
내년 100주기… “한 세기 가기 전에 전 국민이 알아야”
내년 9월 1일이면 이 사건은 100주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정 연구가는 한 세기가 가기 전에 이를 전 국민이 제대로 알고 후손으로서 할 일을 하길 바라고 있다. 또한 관동대지진 학살 사건을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 범죄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유엔 국제법에서는 중국의 난징대학살과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제노사이드 범죄로 적용했다.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건 또한 제노사이드로 인정돼야 할 중대한 사건이 분명함에도 아직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 이에 정 연구가는 국민들이 한목소리를 내도록 관동대지진을 대대적으로 알릴 전시도 준비 중이다.
그는 그간 관동대지진 사건과 관련한 수백 장의 사진을 모았는데 몇 년 전까지도 이 사진을 계속 추가로 사들이고 모으는 등 이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기 위해 준비해왔다. 지난 2019년 수년간의 작업을 통해 500여 장의 사진을 책으로 묶은 <사진으로 본 관동대지진의 실체>를 발간하고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한 전국순회 전시 준비를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시를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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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민족·종족·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나타내는 ‘cide’를 합친 것으로 ‘집단학살’을 뜻한다.
학살한 후 연못 위에 시신을 버려 방치한 모습이다. 많은 시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일본은 이 사진에 대해 학살된 것이 아니라 화재
로 인해 연못에 뛰어들었다는 변명을 했지만 주변 나무들이 멀쩡한 것으로 보아 화재로 인해 죽은 시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 연구가는 “일본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수도 없이 얘기하고 있으나, 사실상 그 2배 버금가는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건은 점점 잊고만 있다. 확실한 사진 입증자료가 있음에도 왜 정부가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나라를 빼앗기고 힘이 없어 타국에서 무고하게 희생됐는데, 이제는 우리가 진실을 알리고 바른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게 후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다”라며 “내년이면 100주기다. 1세기가 지나가도록 우리가 이것도 하지 못한다면 후손으로서 과연 자격이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정 연구가는 또한 관동대지진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을 위해 ‘위령탑’을 건립하는 사업도 계획 중이다. 일본 관동지역과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땅에 짓는 것인데, 이미 적합한 장소도 봐뒀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개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해서 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그래야 희생된 선조들의 넋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가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던 과오를 이제는 최소한의 국가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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