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호 인물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전통음식에 이야기를 입히다

2023.02.23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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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전통음식에 이야기를 입히다 


글 백은영 사진 강은영 사진제공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우리만큼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은 없다.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기록한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렇기에 역사를 고증하고 잊혔던 우리네 역사와 문화를 다시금 살려내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여기 식생활문화연구가로서 50여 년을 오직 우리 민족의 전통식생활문화를 찾아내 알리고, 고증을 통해 잊혔던 전통음식을 재현해낸 이가 있으니 바로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다. 식문화 연구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1970년대, 오로지 우리네 전통식문화를 알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 김영복 원장을 만나 그가 걸어온 50년 외길 인생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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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력

現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경남대학교 산업대학원 초빙교수

전국직업전문학교협회 회장

서울호텔관광전문학교 이사장

BBQ 계열 글로벌 푸드아트 전문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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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 연구, 그 시작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사는 땅에서 산출한 농산물이라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의미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그 지리적, 지형적 특성상 해산물도 풍부하고 농축산물도 많다. 게다가 사계절이 뚜렷하다 보니 농축산물이 계절에 적응하기 위해 내성을 키우면서 약성 또한 강하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전통 음식은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지형과 계절의 영향을 받아 훌륭한 음식이 정말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인삼이라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과 중국에서 생

산되는 것이 약효가 다르듯이 말입니다. 우리 전통음식의 가치는 반만 년 역사를 거쳐 오며 이미 검증이 된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세계적인 음식, 몸을 살리는 음식이될 수 있는 것이죠.”


김영복 원장은 이런 우리의 전통음식과 식생활문화가 잊혀져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한국 식품문화사학의 태두인 한양대 이성우 교수(1992년 작고) 외에는 우

리의 전통식생활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때였다. 


“저부터라도 전통식생활문화에 관심을 가져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토요일 업무를 마치자마자 시외버스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전통음식을 하는 분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문헌자료도 찾고 정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죠.”


1970년대 당시만 해도 비포장도로가 많아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는 말 그대로 정신없이 다닐 때였다. 청계천 헌책방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헌책방에 가서 음식에 관련된 글이 단 3~4줄만 있어도 전부 구입했어요. 살 수 없는 책이라면 따로 수첩에 기록하든지, 복사를 하든지 해서 자료를 모으고 글을 쓴

지가 벌써 50년이 넘었네요.”


지금은 먹방 유튜브, 맛집 소개 등 일명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많고, 전통음식의 유래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이들도 많아졌지만, 김영복 원장이 전통식생활문화에 대한 자료를 찾아다니며 글을 쓰기 시작한 1970년대는 분위기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음식에 담긴 이야기와 유래를 찾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그 무모한 도전이 있었기에 문헌으로만 남아있던 ‘진주냉면’과 ‘헛제삿밥’ 같은 전통음식을 재현해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맛으로만 음식을 평가하고 평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봐요. 음식의 맛은 주관적이거든요. 그래서 식생활문화에 더 관심을 갖고 접근했던 것 같아요. 식생활문화에는 역사학·고고학·민속학·국문학이 다 녹아있어요. 그만큼 우리 민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방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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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예나 지금이나 맛으로만 음식을 평가하고

평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봐요. 음식의 맛은

주관적이거든요. 그래서 식생활문화에 더 관심을

갖고 접근했던 것 같아요.

식생활문화에는 역사학·고고학·민속학·국문학이

다 녹아있어요. 그만큼 우리 민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방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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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식문화의 영역은 단순히 영양학이나 가공학, 조리학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그 시절 개인이나 사회가 소비하는 음식을 보면 당시 그 사회가 처한 환경이나 기쁨, 슬픔과 같은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고, 역경이나 고난과 같은 것이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식생활문화는 민족의 역사이자 문화이며 거대한 자산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저라도 자료를 찾고 연구해서 우리 음식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지난 50여 년간 그가 찾아내 알린 우리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1000가지가 넘는다. 그의 다짐처럼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충분히 답해줄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쌓인 것이다.


식문화, 체계화·학문화 필요

해병대 출신에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던 이력이 있는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키가 크고 풍채가 좋다. 얼핏 섬세함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사라졌던 전통음식을 재현해내고, 음식에 얽힌 생활과 문화를 찾아내 알리는 것처럼 섬세함이 요구되는 일도 없다.


시 <자아를 씻는 푸닥거리>로 신춘문예에 등단했을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도 풍부한 그다. 꾸준한 글쓰기와 내재된 문학적 감수성은 그가 식생활문화연구가로서 50여년 외길을 걸어오는 데 있어 보이지 않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자료를 찾고 수집한 것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전통 식문화를 세상에 알리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다. 읽기 어려운 고문헌이나 사료 등에서 그 유래와 습속을 찾아내 세상에 알려야 하니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것은 물론 재미를 주는 것도 중요했다.



“우리 음식은 하나하나마다 스토리가 있어요. 이 음식 

의 유래는 어떠하며, 또 그 음식이 어떤 습속과 연결

돼 있는지가 전부 담겨있거든요. 그런데 중국이나 유

럽의 ‘푸드 스토리’는 알아도 정작 우리 민족의 ‘푸드

스토리’는 잘 몰라요. 어느 나라의 푸드 스토리보다

우리나라의 푸드 스토리가 내용도 풍부하고 깊이가

있는 데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못 살고 못 먹었던 시절, 먹고 살기 바쁜 나머지 우리 음식에 담긴 이야기는 잊고 살았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그 잊고 살았던 ‘이야기’를 다시 세상에 꺼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체계적으로 정립해 학문의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사람들을 보면 젓가락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상차림의 경우는 더욱 모르죠. 이런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식생활문화입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전통음식까지도 재현해낼 수 있는 식문화의 체계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주냉면’ 등 전통음식 재현

칼럼 외에도 방송 출연 및 프로그램 자문을 통해 역사와 유래를 중심으로 식문화를 재조명하면서 우리 음식의 가치를 알려온 그는 그 못지않게 전통음식을 복원하고 개발하는 일에도 앞장서왔다. 그중 하나가 1999년 재현한 ‘진주냉면’이다.


“1998년 중국의 도문 지역을 여행하다 북한에서 넘어온 <조선의 민속전통-1식생활풍습편(북한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4. 1. 25 발행)>을 보게 됐어요. 반가운 마음에 책을 읽어 보니 ‘냉면 중에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다’라는 구절이 있었어요. 평양냉면은 알겠는데 진주냉면은 금시초문이었죠.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함흥냉면이라고 부르는 함흥식 물냉면은 ‘농마국수’, 비빔냉면은 ‘회국수’라고 씌어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이후 진주냉면에 대한 기록을 찾기 시작한 그는 1999년 진주 지역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조사 끝에 1960년대 중반까지 진주시 옥봉동을 중심으로 진주 냉면을 하던 식당들이 있었으나, 1960년대 중반 중앙시장 화재로 상가가 소실되면서 몇 년 후 진주냉면의 맥이 완전히 끊긴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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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이 2009년 미국 콜로라도주

헤리티지재단 주최로 록키산맥 정상에서 열린 한국

입양아 캠프 행사에 주관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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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임상 미국순회전시



“진주냉면에 대한 문헌과 수소문 끝에 찾은 진주냉면 기술을 가진 어르신 세 분의 기억을 바탕으로 1999년 ‘진주냉면’을 재현해낼 수 있었어요.”


이외에도 ‘진주헛제삿밥’과 ‘효종갱(曉鐘羹)’ ‘침도’ ‘해주비빔밥’ ‘무술주’ ‘흑삼계탕’ ‘어육김치’ ‘구선왕도고’ 등 그가 재현한 전통음식만 해도 여럿이다. 배춧국인 ‘효종갱’은 지금으로 치면 ‘배달음식’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항아리에 효종갱을 담아 한양 양반집으로 배달했어요. 효종갱은 높은 벼슬의 양반들이 연회를 마친 후 술에 시달린 속을 다스리기 위해 시켜 먹었던 최초의 배달 음식이라고 볼 수 있어요.”


‘침도’는 복숭아물김치로 2008년 KBS <도문대작>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전통음식 재현은 물론 새로운 음식을 개발해 외식산업의 질적인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데도 열심을 낸다.


진주냉면을 재현해낸 그 뚝심으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식감의 냉면을 개발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지금은 공주알밤냉면을 개발중에 있다.


또한 <김영복의 한식견문록>을 통해 1000가지 푸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전국의 손맛을 자랑하는 분들과 함께 천지TV를 통해 ‘김영복의 맛있는 밥상’을 유튜브에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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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원장은 지난 2008년 6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3회 떡의 세계화를 위한 작품발표회>를 주관했다. (출처: 뉴시스)


 

한식 세계화에 기여

2000년도 이후 김영복 원장은 일본·중국·미국 등지에서 다양한 국제행사를 개최해 한식의 우수성을 알려왔다.


2000년 일본 오사카 ‘마당’ 초청 재일교포 요리사 교육, 2004년 하이 서울 축제 전통음식 전시, 2005년 미국 뉴욕 한가위 축제 떡 퍼포먼스, 2006년 미국 뉴욕 한국

음식 강연 및 전시회, 2008년 떡의 세계화를 위한 작품발표회 주관, 2008년 미국뉴욕총영사 유엔외교사절 초청만찬 주관 등 한식을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2005년 미국 맨해튼에서 외국인들에게 ‘떡’문화를 알리고 있던 때였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떡을 입에 물고는 ‘좋다’ ‘맛있다’고 했는데, 가다가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습을 봤어요. 떡의 쫀득한 느낌이 싫었던 거죠. 설기의 식감을 빵과 가깝게 해서 내놓으니 반응이 좋았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식생활과 문화를 잘 융합한다면 K-푸드(food)는 반드시 세계화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한국 전통음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서 그들의 식생활과도 동떨어지지 않는 K-푸드를 향한 그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음식에 대한 스토리에 레시피, 양념까지 같이 수출한다면 K-푸드는 머지않아 세계 각국에서 열광적인 찬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구이 문화로 시작한 서양음식과 비교했을 때 신석기시대부터 토기 사용으로 습열 조리가 가능한 증숙(蒸熟) 문화로 시작된 우리의 식문화가 앞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삼면이 바다인 지형적 특성과 뚜렷한 사계절까지,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식문화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K-푸드의 참 면목을 알리는 그 길에 여전히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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