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호 인물 고홍곤 사진작가 꽃을 찍는 男子, 희망을 얘기하다
고홍곤 사진작가
꽃을 찍는 男子, 희망을 얘기하다
글 백은영 사진 남승우, 고홍곤 사진작가 제공
당신이 있어 더 꽃이 됩니다
꽃 피운다는 그 자체가 희망 입니다
복수초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벗하며 꽃을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우리나라 민화에는 유독 꽃그림이 많다. 자연을 노래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이들, 혹자는 이들을 시인묵객이라 부른다. 한 줄의 시로, 때로는 한 폭의 그림으로 자연을 그려낸 이들. 문득 진정한 선비는 속세를 떠나지 않고도 삶 속으로 자연을 들여와 너와 내가 더불어 자유로운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는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 늘 꽃과 함께하며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이가 있다. ‘꽃’ 사진작가로 불리는 고홍곤 사진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 3월 아홉 번째 개인전을 마친 고홍곤 작가에게 꽃은 벗이자, 어머니이자, 스승과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그는 틈만 나면, 아니 틈을 만들어서라도 카메라 렌즈에 꽃을 담기 바쁘다. 산으로, 들로, 바닷가로…. 그가 가는 곳에 꽃이 있고, 꽃이 핀 곳엔 언제나 그가 서있다.
구절초_천왕봉
마음이 머무는 풍경에 가던 길 멈출 때
꽃잎의 언어로 빛나는 눈부신 함성이여
아홉 번의 개인전 & 사진집
‘또꽃 작가’ 고홍곤의 희망 프로젝트
생명력과 희망의 메시지 담아
꽃, 희망이 되다
고홍곤 작가는 200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년마다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는 날마다 조금씩 더 성장하기 위한 자신과의 약속이자 시련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개인전을 준비할 때마다 사진집을 내다보니 어느덧 아홉 번째 사진집을 출간하게 됐다. 그의 아홉번째 사진집 <꽃, 저 눈부신 함성이여>는 제9회 개인전의 주제이기도 하다.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또꽃 작가’라고 불러요. 전시회 주제가 또 꽃이냐는 거죠.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의 종만 30만 종 이상이 돼요. 그 수많은 꽃들 중 제가 아직 못 본 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또꽃 작가’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요.”
그의 첫 개인전 주제는 <꽃, 향기 그리고 미소>였다.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 모두 ‘꽃’이 주제가 됐으니 “또 꽃이냐”는 소리를 들을 법하다. 그만큼 고홍곤 작가에게 ‘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소중한 존재다.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 척박한 땅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언 땅을 녹이며 피어나는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을 보며 다시금 일어날 힘을 얻었고, 그 생명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기에 꽃은 이제 어엿한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늘 꽃만 찍는 작가이기에 ‘꽃길’만 걸어온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에게도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가 SK상사에서 디지털영상장비 관련부서 업무를 담당하던 중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맞게 되고, 고 작가는 이듬해인 1998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사진감정관으로 특채가 돼 형사 사진실에서 사진 및 비디오 감정 업무를 맡게 된다.
온 나라가 힘들었던 시기, 그 역시 대기업에서 공무원의 삭감된 급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심적으로는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이전에는 아름다워 보였던 꽃들도 회색빛으로 보였을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아스팔트 틈새에 핀 노란 민들레와 작고 여린 꽃들이 그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됐다.
“IMF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한번은 중국산 들깨 씨앗을 심었는데 며칠 후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꿈꾸게 됐어요. 그 작은 씨앗이 가진 생명력에서 힘을 얻게 된 거죠.”
그렇게 작은 씨앗에서 움튼 생명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에 대한 갈망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야생화 사진을 찍게 됐다는 그다.
“처음부터 꽃이 가진 생명력을 본 것은 아니에요.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관찰하니 비로소 그 꽃이 가진 생명이라든가 희망,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해 수학여행을 가면 친구들 사진 찍어주기 바빴다던 그가, 이제는 들녘에 핀 꽃과 산꼭대기 바위틈에 피어난 풀 한포기를 찍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것도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법이 없고, 꽃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순간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그다.
척박하다고 탓하지 마라.
마음이 간절하면 꿈은 피어나나니
그 고운 얼굴들 부르면 누군가 나올 것 같은 이 가을…
“자연에서 자란 꽃들, 사람이 가꾸는 게 아닌 하늘이 가꾸는 꽃들을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저는 야생화 한 송이에서 백만 볼트 이상의 에너지를 느껴요. 바로 ‘희망’이죠. 그 희망을 저 혼자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가 개인전과 함께 사진집을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희망을 더욱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어낸 제3의 전시장이 바로 ‘사진집’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사진집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제3의 전시장”으로 전시회 준비 에너지의 90%를 쏟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홍곤 작가의 사진집이 특별한 이유는 야생화 사진과 짝을 이룬 몇 줄의 짧은 메시지가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한 줄도 길다는 말이 있어요. 아직 제 글이 길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평소에 책도 많이 읽고 글 연습도 많이 하는데 짧으면서 울림 있는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네요.”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며 웃어 보이는 그이지만, 사실 그의 글과 사진에 감동받아 전시회장을 찾은 이들도 적지 않다. 지인들 위주로 시작됐던 전시가 회를 거듭하면서 어느새 그의 사진과 글에 감동받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됐고, 그 또한 그들의 격려와 채찍에 힘입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꽃’으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우리, 꽃씨를 닮은 마침표를 찍자
고홍곤 작가는 대검찰청 재직 중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사진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사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던 그는 일과 병행하며 2003년 힘들게 졸업하고 나니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홍매_순천
동자꽃_덕유산
분홍노루귀_이천
“그동안의 노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정말 힘들게 졸업하니 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작가가 돼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대검찰청 로비에서 2006년 첫 개인전을 열게 됐죠.”
그는 첫 개인전 당시를 회상하며 아는 선배에게 사진에 맞는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선배가 ‘글은 자네가 쓰는 거야. 내가 자네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하시며 나지막이 일침을 놓으시는데 너무 부끄러워 숨을 곳이 없었어요. 제 생각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저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울림을 주는 짧은 글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고 작가는 말한다. 자연이 큰 스승이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자연에 오롯이 몸을 맡긴 채로 자연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고 말한다.
“산에도 눈이 있고, 바위에도, 꽃에도 눈이 있어요. 그 눈과 눈이 마주칠 때 이야기를 건네죠. 때로는 산과 제가 하나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때는 마치 신이 제게 하나, 둘 글을 던져주는 것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요.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받아 적죠.”
그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어 건네는 메시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긴 여운으로 남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가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는 이뿐 아니다.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동부지방검찰청 범죄피해자센터 멘토위원으로, 2011년에는 (사)한국피해자지원협회 위원으로, 2018년에는 한국범죄방지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희망을 전했다.
문주란_제주
너도바람꽃, 엘레지_광덕산
“한국범죄방지재단 위원으로 활동할 때였어요. 경기도 안양의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안양소년원)에서 여느 고등학생과 다름없이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야생화 사진을 통해 삶의 어려움으로 지친 이들뿐 아니라 교도소, 소년원 등에 있는 이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세상은 넘어졌다 다시 뛰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는 말처럼요.”
그가 힘들었던 시기 생명을 가진 작은 씨앗 하나에서 위로를 받고, 바위틈에서 피어난 꽃한 송이에 희망을 품었던 것처럼 그 또한 세상의 풍파에 넘어지고, 흔들린 사람들에게 작은 ‘꽃등’ 하나 비추고 싶은 희망을 전한다.
‘꽃 작가로 남고 싶다’는 고홍곤 사진작가. 그는 ‘꽃과 함께하다 이 자리에 눕다’와 같은 묘지명을 쓰고 싶을 정도로 꽃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꽃이 지는 것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허무한 삶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는 그는 낙화를 통해 삶을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꽃잎, 꽃받침 다 버리고 마지막 씨 한 톨 남기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마음. 우리네 인생도 이해인 수녀님 말씀처럼 꽃씨를 닮은 그런 마침표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처럼 우리의 삶도 버리고, 비우고 삶을 단순화하며,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에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잡고, 작은 꽃씨 하나 남기고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이길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그는 인공불빛 하나 없는 산속에서 별빛으로 촬영한 꽃들과 비 오는 날 촬영한 꽃들을 주제로 전시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이러한 모든 작업들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싶다는 고홍곤 작가. 우리 모두는 그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꽃’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기를 당부하며, 오늘도 그는 이 강산 어딘가에서 꽃과 눈 맞추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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