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인물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역사는 오늘을 위한 거울과 경계”

2023.11.15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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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역사는 오늘을 위한 거울과 경계” 


백은영, 김예슬

사진 남승우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그걸 다시 겪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이 말은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은 없다지만, 지난 역사를 거울과 경계로 삼는 것은 똑같은 실수나 아픔이 반복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치욕과 고통으로 점철된 역사라도 끄집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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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인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이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공무원이었던 그는 목포지방노동사무소장으로 있던 지난 2004년 처음으로 책을 냈다. <국화처럼 향기롭게>라는 수필집이다. 당시 그는 신문 <목포투데이>에 남도 역사 기행을 연재하는 등 역사 유적을 답사하고 기록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답사와 여행은 그에게 끊임없이 ‘글감’을 제공했고 수많은 책들을 집필하며 독자들을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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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원장 수필집

<국화처럼 향기롭게>



사실 역사, 문화, 정치는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역사의 한 부분, 한 부분을 오늘날 다시

꺼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잊지 않도록 돕는 일, 그가

숙명처럼 생각하는 일이다.



빛고을 광주에서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그는 2011년 6월 말 퇴직을 앞두고 <무등일보>에 연재한 글을 모아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책으로 탄생시켰다. 호남의 역사 인물을 통해 오늘의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2012년 9월부터 2013년 6월까지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 학장을 지낼 때는 <퇴계와 고봉, 소통하다>라는 책을 냈다.


적을 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지역의 역사를 탐구하고 답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쉬지 않았다. 일과 병행하여 책을 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그를 뚝심의 저술가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그는 <남도문화의 향기에 취하여> <거북선을 만든 과학자 나대용 장군 평전(2023)> <아우슈비츠 여행(2017)> <부패에서 청렴으로(2016)>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1, 2)(2011, 2013)> <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2014)> <유럽의 노사관계과 고용> <알기 쉬운 근로자파견제도> 등의 책을 펴냈고, 그 내용은 역사뿐 아니라 정치와 문화를 두루 아우르고 있다.


사실 역사, 문화, 정치는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역사의 한 부분, 한 부분을 오늘날 다시 꺼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잊지 않도록 돕는 일, 그가 숙명처럼 생각하는 일이다.


몇 달 전 대구근대화골목에 있는 계산성당을 돌아보며 연재할 ‘글감’이 떠올랐다는 김세곤 원장. 현장에 가지 않으면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없기에 늘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고 글을 쓴다는 그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들이 내심 기대된다.


책이 좋다, 역사가 좋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도 많았어요. 답사와 여행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삼국지>와 <열국지>를 다 읽을 정도로 역사와 책을 좋아했던 그다. 다독다서가 글쓰기의 탄탄한 자양분이 된 것

이다.


최근 100년 만에 복원된 덕수궁 돈덕전을 방문했다는 그는 대한제국을 비롯한 한국 근대외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실(2층)을 보며 아쉬움이 남았다고 전했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우리가 왜 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당시 외국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을 기록한 신문기사라든가, 중국의 계몽사상가이자 문학가인 양계초가 밝힌 조선 멸망의 원인 등을 한 섹션에라도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선의 망국 소식에 눈물을 흘렸다는 양계초의 속내는 차치하고 1910년 9월 14일 <국풍보>에 ‘조선 멸망의 원인’에 대해 기고한 내용은 우리가 한번쯤은 생각해볼 내용들이다. 내용 중에는 “한일합병조약이 발표되자 오히려 이웃 나라의 백성은 조선을 위해 흐느껴 울며 눈물 흘렸는데 조선 사람들은 술에 취해 놀며 만족했다. 더구나 고관들은 날마다 출세를 위한 친일운동을 하고 일본제국의 자랑스러운 귀족작위를 얻기를 바라며 기꺼이 즐겼다.” 등이 있다.


양계초는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을 무능한 왕실내부의 싸움과 무능한 양반에 있다고 생각한 인물이다. 대한제국의 망국을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대규모 토목공사, 대원군 실각 이후 집권한 왕후 민씨(명성황후)와 민씨 친족의 전횡의 결과라고 본 것이다. 뿐만 아니다.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로 나뉘어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 서로 싸운 것 역시 망국의 원인으로 내다봤다.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망국의 원인,멸망의 과정을 되짚어보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김세곤 원장이 올해 초 <대한제국 망국사>를 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제국의 긍정적인 면이 아닌 망국에 초점을 맞춰 각종 사료와 외국인 저서, 역사서 등을 하나하나 살펴봤다는 김세곤 원장. 일문일답을 통해 그가 왜 ‘대한제국’의 ‘망국사’를 다뤄야 했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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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원장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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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원장의 일문일답


― 망국사를 다룬 이유가 있나.

‘망국사’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제목의 책은 많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있어 망국은 불편한 단어지만,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혜와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애(西厓) 류성룡은 임진왜란 7년 전쟁을 겪고 “잘못을 뉘우치려 경계해 나무라고, 훗날의 환난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한다”는 의미로 <징비록>을 지었다. <대한제국 망국사>도 치욕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성찰에서 쓴 것이다.


조선 전체를 다루고자 했으나 대한제국을 통해서도 현 시대에 필요한 성찰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범위를 줄였다. 그러나 대한제국 탄생 전야 등도 다뤘기 때문에 완전히 대한제국만 다뤘다고 할 수는 없다.


―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썼나.

원인보다는 ‘망국의 과정’을 제대로 살펴보고자 했다. 망국의 원인을 두고 “일본 때문이다” “미국 때문이다” 등 많은 분석과 논란이 있지 않나. 그러나 대한제국 13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즉 어떻게 탄생했고 망국이 됐는지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을 통해 과정을 들여다보면 망국의 원인도 저절로 규명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나라 계몽주의자 양계초는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조선 자신”이라고 했다. 뼈아픈 말이지만 제대로 된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 중요하게 다룬 부분은.

과정을 다 다룰 수는 없겠지만 크게 국내문제와 국제관계를 다뤘다. 국내문제는 고종을 비롯한 당시 관료들이 백성을 위해 일 했느냐와 부정부패에 대해 다뤘다. 국제문제로는 우리가 자주적으로 외교활동을 했는가에 중점을 뒀다.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부정부패가 심각하다.

과거 망국의 원인을 되풀이하지 말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 사리사욕을 챙겨서

생기는 게 부패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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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국의 과정을 다루면서 느낀 점은.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지만 1894년 4월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했을 때 고종이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지 않고 전봉준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면, 1898년 12월 고종황제가 독립협회를 강제 해산하지 않고 중추원에 의회 기능을 부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부정부패도 상당히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국 지리학자 비숍 여사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두 사람들만 존재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그는 1/5은 양반으로 구성된 관료들로 이들은 허가받은 흡혈귀고, 나머지 4/5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하층민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부정부패가 심각하다. 과거 망국의 원인을 되풀이하지 말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 사리사욕을 챙겨서 생기는 게 부패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당시 힘이 없기에 각종 협정과 조약에서 조선은 번번이 제외(무시)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힘이 있는 만큼 외교 등을 자력으로, 자주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망국’이라는 단어 때문에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썼다. 고종과 커피 이야기 등 대중이 잘 알고 있는 내용도 다뤘다. 치욕의 역사는 다시 반복될 수도 있다. 독자들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망국의 과정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적용되는 건 없는지 살피고 고쳐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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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망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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