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호 인물 “미쳐도 좋아, 나만의 세계를 사진에 담아낸다”

2024.02.19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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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도 좋아,

나만의 세계를 사진에 담아낸다” 


글·사진 장수경 사진제공 최정호 사진작가



“꽃 구경합시다!”

이 한마디가 어쩜 이리도 감성적일까. 뒤로 질끈 묶은 하얀 머리. 눈에 띄게 열정적이고,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가진 최정호 사진작가. ‘분당꽁지’로 유명한 최 작가를 주변 사람들은 ‘괴짜’라고 부른다.


그는 남들은 쉽게 지나치는 것에 주목하며, 특유의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선각자(先覺者)’라는 표현이 어울리듯, 그는 시대를 선도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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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꽁지’

최정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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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개인전 <꽃이 피어나다>

경기도 성남시 신구대학교식물원 갤러리 우촌에서 만난 최 작가는 드립커피 한 잔을 건네며 따스하게 반겨줬다. 향긋한 커피는 미각을 깨우며 예술적 경험의 시작을 도왔다. 전시장 내부는 흰색 벽면에 매달린 꽃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작가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사진들은 각기 다른 꽃들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그의 9번째 개인전 제목은 <꽃이 피어나다>다. 꽃 사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전시에 담아냈다. 최 작가는 들꽃 하나에도, 너무 작아 꽃인지도 모르는 야생화 하나에도 관심을 표현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꽃들은 카메라 렌즈 속에 담겨 어여삐 피어올랐다. 하얀 눈 속에서 살포시 피어오른 꽃은 신비로움을 자아냈고, 마치 눈앞에서 보듯 생생했다. 전시 홍보를 크게 하지 않았음에도 2주 넘게 열린 전시에는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꽃들을 만났다.


“형언할 수 없다고 할까요. 꽃을 보면 연애할 때 같은 기분입니다. 제 삶의 활력소예요. 꽃의 예쁨을 만난다는 것 기쁜 일이죠. 똑같은 꽃이어도 매년 다릅니다. 장비나 렌즈에 따라 다르게 예쁨이 표현됩니다.”


관객이 오래 머문 곳은 전시장 가장 안쪽에 자리한 스크린이었다. ‘빅토리아 연꽃’의 개화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여름 내내 실컷 자라 이틀을 피고 진다는 빅토리아 연꽃. 꽃이 피는 시간도 낮이 아니라 밤이어서 일반인들은 쉽게 만날 수 없다. 첫날 밤 하얗게 피어오르고, 아침에 오므라들 땐 분홍색을 띈다. 다음날 빨갛게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빅토리아 여왕의 왕관을 닮은 꽃을 피우고 죽는다. 어쩔땐 완벽하게 다 피지도 못하고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최 작가는 빅토리아 연꽃이 개화하는 순간을 담기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로 사흘 밤낮을 촬영했다. 피어나는 과정을 매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10초마다 꽃의 모습을 찍었다.


“똑같은 방식으로 촬영해도 꽃을 찍으면 활짝 피고, 별을 찍으면 일주가 돼요. 카메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사계절을 재밌게 놀 수 있죠.” 카메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표정은 어린 소년처럼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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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사계절을 재밌게 놀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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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사진작가가 찍은 야생화. 위에서부터 ‘호자나무 꽃과 열매’ 

‘고마리’ ‘앵초’ ‘깽깽이풀’




“나 좋아하는 것 하고 살겠다”

최 작가는 학창시절부터 사진 촬영을 즐겼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는 사진관에서 학생증을 내고 카메라를 빌렸다. “제가 친구들 사진을 찍으면 참 잘 나오는데, 제가 찍힌 사진은 참 엉망이었어요.” 그때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사회에서의 첫 직장을 통해 자신의 적성이 사진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길을 개척해 나가기로 결심한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겠다!”


퇴사 후 학원에서 영상 비디오 촬영을 배운 최 작가는 20대 중반쯤 비디오 기획실을 설립해 운영했다.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남들보다 빠르게 업무를 익히고 성장할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다큐멘터리 제작 업무를 맡게 되면서 해외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갔다. 주말에는 여유 시간을 활용해 예식장 영상 비디오를 제작 했으며, 6년간 안경사를 운영한 뒤작은 사진관을 차린다. 사진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노력한 결과, 그는 사진의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이후 좀 더 자유로운 촬영을 위해 사진관을 접게 된다.


“하루하루 일상은 즐거웠어요. 유치원 아이들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때론 골목 구석구석을 담아냈어요. 곱게 핀 야생화를 찍기도 했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저를 미쳤다고 했어요. 돈도 안 되는 것을 왜 찍느냐 면서요. 그래도 전 즐거웠어요.”


그러던 중 카메라 시장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된다. 최 작가는 찍은 사진을 자랑하고 싶었고, 블로그 일기장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블로그가 성장할 무렵인 2010년. 우리나라 연예계에서는 잊지 못할 큰 사건이 발생했다. 한류스타인 박용하씨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이 충격적인 소식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팬들에게도 슬픔을 안겼다. 안타까운 소식에 팬들은 고인이 잠든 경기도 분당의 묘지를 찾아 추모했다.


“수필가인 집사람의 요청으로 처음 사진을 찍었어요. 분당에 많은 일본 팬이 직접 찾아왔고, 박용하씨의 묘지에는 매일 꽃들이 놓였죠. 일본 팬들은 얼마나 박용하씨가 그리웠을까요. 나는 꽃들을 찍어서 추모의 마음을 담아 내 블로그에도 사진을 올렸어요.”


이후 최 작가는 10년간 일본 팬들을 위해 블로그를 통해 소식을 전했다. 일본의 문화인 ‘달기일(매달 기일을 기억하는 날)’을 챙기며 함께 고인을 추모했다. 그의 진심을 팬들도 알았던 걸까. 어느새 그는 일반인을 넘어 파워블로거의 주인공이 돼 있었다.


성남의 모든 것을 담다.

성남시도 그의 블로그에 주목했다. 그간 촬영해 모아놓았던 성남의 사진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미친놈’ 소리까지 들어가며 찍은 사진들이 비로소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시대는 이미 흘렀고, 성남도 많이 바뀌었어요. 옛 모습의 사진을 다시 찍는 건 불가능했죠. 저는 광주대단지 시절의 사진도 갖고 있었는데,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자연스레 관공서나 옛 사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저에게 문의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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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찍은 하늘에서 본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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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사진작가가 찍은 성남 기록사진


 


최 작가는 도시의 변천 과정을 담은 ‘비포 앤 에프터(Before And After)’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간 성남의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며 작은 것 하나도 유심히 촬영해 왔기에, 성남시에서 사라진 건물이나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그는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변수가 발생한다. 도시가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빌딩이 높아지면서 동일한 모습을 담기 어려워진 거다. 이는 오히려 그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게임기조차 사용해 보지 않았던 그가 ‘드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사진과 관련된 거니까, 열정이 식지 않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안주하고 도태됐다면 여전히 필름 카메라에 머물렀을 겁니다. 딸내미에게 드론을 사달라고 해서 집에서 연습하고 식물원에서 연습하다가 떨어뜨려 두 대를 망가뜨렸어요. 그래도 전 자신 있었죠. 본격적으로 드론을 배워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격증도 따게 됐어요. 이제는 전시를 통해 저의 드론 세계도 보여줄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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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쟁이로 살 거예요.

어느 한 부분의 장인들은

그만큼 미쳐야 합니다



“평생 사진쟁이로 살 것”

최 작가의 고향은 경기도 여주 능현리다. 이곳에는 명성황후 생가가 있었다. 이곳 부근에서 그는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성남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뛰어놀며 자랐다. 훗날 명성황후 생가 복원사업으로 마을 전체가 이주됐다.


“여주에는 제가 놀던 추억의 장소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요. 그걸 깨달았을 때 저는 성남만큼은 기록을 해두자고 생각했어요. 그때가 한창 재개발 붐이 불던 시대였죠.”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골목 구석구석을 사진에 남겼다. 낡은 상가 건물, 어느 집의 낡은 대문과 간판.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니었지만, 그에겐 모두 오랫동안 기억돼야 할 소중한 순간이었다.


“제 사진 속의 낡은 간판들은 이제는 만나지 못해요. 언젠가 하나의 역사로 기록되니, 꽃만 찍는 게 아니라 때로는 역사 속의 아픈 기억도 하나하나 기록하려 했어요. 저는 역사학자들이 그 시대의 역사를 그대로 써 내려가길 바랍니다.”


그는 앞으로도 성남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꽃도 찍을 예정이다. 특히 야생화 전시를 꾸준히 하고, 도록도 제작하고 싶다고 밝혔다.


“저는 사진쟁이로 살 거예요. 어느 한 부분의 장인들은 그만큼 미쳐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사진을 찍을 때 설레고 가슴이 뛰어요.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좋아하는 걸 블로그에 꾸준히 올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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