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호 인물 복기대 고고학 교수 잃어버린 우리의 국경을 찾아서

14일 전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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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대 고고학 교수

잃어버린 우리의 국경을 찾아서 


글 이예진 사진 남승우 사진제공 복기대 인하대학교대학원 융합고고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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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과 두만강부터 시작해 제주에 이르는 한반도 지경은 우리에게 익숙한 형상이다. 우리의 한민족이 이 한반도 지경을 벗어난 때는 광개토대왕이 다스렸던 고구려와 발해 쯤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복기대 인하대학교대학원 융합고고학전공 교수다.


복기대 교수는 만주지역 고고학을 연구한 권위자다. 1992년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던 중 우리나라 고대사에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과제를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있는데 고구려 평양성이 중국 만주에 있는 요녕성이라고 나왔다. 그래서 만주에 가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삼한이 만주 지역이라는 등의 기록이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싶었다”고 밝혔다.


중국 유학 시절의 깨달음은 그가 지금껏 우리나라 역사의 지경(地境)을 파헤치는 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박물관까지 만들며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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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정거림도 이겨내고

복기대 교수는 원래 미학을 공부하려고 했으나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고조선으로 전공을 틀었다. 윤내현 교수의 고고학 강의를 통해 신화로 느껴지던 고조선의 이야기가 합리적으로 들렸다고 한다. 후에 생각하길 본인의 사고에서는 창의력이 있는 미학보다 논리적인 것이 맞다고 느꼈다.


그런 그는 만주로 유학을 하게 되는데 대학 시절 배웠던 고조선에 관한 것과 다른 이들이 연구한 것을 고고학적으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고고학자로서 공부하려고 갔던 유학길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는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과제 작성을 위해 <요해총서> 등을 찾아보는데 요동반도에 진한이 되어 있다고 적혀있었다. 왜 만주에서 진한이 나오지 싶어서 동네를 찾아갔더니 그 동네에서는 삼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었다”며 “또 <요사>를 보고 있는데 고구려 평양성이 중국 요녕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때부터 조금씩 알고 있던 역사에 의문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러한 의문점을 가지고 중국 자료에 나오는 내용을 메모하면서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순수고고학에 전념하기 위해 중국에서 모은 자료를 주변 지인들에게 전달했다. 논문을 쓸 만큼의 자료였지만 아무도 쓰지 않고 오히려 빈정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논문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에 논문을 작성해 <백산학보>에 전달했으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실어주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복 교수는 전혀 충격적이지 않다고 했으나 <백산학보> 측에서는 톤을 다운시켰으면 좋겠다고 전했고 결국 설왕설래하다가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취소가 됐다. 그는 “당시 내가 연구한 게 맞는데 안된다고 하니까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당시에는 논문을 내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논문 발표를 했다”고 말했다.


뚝심있게 연구한 결과 고려의 국경이 압록강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 이어진 것과 고구려의 평양성이 현재의 평양이 아닌 중국 만주지역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그와 함께 활동을 했던 허우범 박사는 통일신라 북방한계 역시 지금의 원산만 이남이 아니라 중국 길림성 용정지역이라는 것도 찾아내는 큰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그가 기존 사학계의 눈치를 받으면서도 이렇게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알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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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녕성 의무려산 천문대유적 답사하러 갔을 당시의 복기대 교수



복 교수는 “처음에는 고구려 평양성이 고려 서경과 연관된 것을 생각하지 못해 잠깐 오류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며 “잘못한 것인가 생각하면서 중국의 역사책인 <요사> <금사> 등을 꼼꼼히 읽어봤다. 우리나라 역사책인 <삼국사기> 등과도 비교해보면서 맞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만주지역 관련 책을 굉장히 많이 보니까 글을 몰라도 책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면서 “국경사 틀은 2차 방정식과 같다. 지금까지는 2차 평면도는 그린 것 같은데 이제 3차 입체도를 그리는 게 내 숙제”라고 설명했다.


“일제의 잘못된 지도, 바로 잡아야”


최근 KBS2에서 방영됐던 역사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있다. 이에 대해 복기대 교수는 “사료를 기반으로 한 사극 드라마의 경우 파급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며 “흔히 하는 말로 ‘픽션’ 드라마이기 때문에 작가의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럴 것 같으면 역사적인 사람들의 이름이나 지명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제작진들이 픽션이라고 하면서 역사성을 넣어 시청자들에게 신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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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대 교수



그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 것은 드라마에 삽입된 지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복 교수는 “우리나라 사극이 얼마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안다면 그렇게 못할 것”이라며 “눈에 보이는 지도는 기억에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오해될만한 내용을 넣어서는 안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가 지적한 지도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 벌어지는 지경(地境)에 대한 내용이다. 복 교수는 “고려와 거란이 전쟁할 때 압록강은 지금의 중국 요하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압록강을 오늘날의 압록강으로 설정해 지도를 그리면 고려영토의 약 250㎞정도가 축소된다는 것을 고려했어야 한다”며 “사실 현재 드라마에서 썼던 지도는 아마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도를 기본으로 한 것 같은데, 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지도가 고려의 실제 영토를 2/3이나 줄어져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원인으로 대일항쟁기 때 일제가 조작한 지도를 꼽았다. 복 교수는 “1913년에 만들어진 지도인 <조선역사지리>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이는 일제에 의해 우리 역사가 조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의 지경은 1909년 일본이 청나라와 <간도협정>을 맺으면서 획정된 것으로 일본은 이 틀을 바탕으로 1913년 <조선역사지리>와 <만주역사지리>를 편찬했다. 이 내용에는 한국사의 최대 판도를 현재의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정한 것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복 교수는 “전해지는 사료들을 분석해 볼 때 고구려, 통일신라, 발해부터 고려, 조선의 영토는 모두 지금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섰다”며 “그런데 일제의 조작으로 모든 국경선이 현재의 압록강 이남으로 설정됐다. 아쉬운 것은 최근 들어 우리 역사의 새로운 국경선에 대해 다시 밝혀지고 있음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드라마에 잘못된 지도를 삽입한 것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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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대 교수가 최근에 편찬한

<우리는 고조선을 어떻게 이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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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제의 식민사관과 같은 역사왜곡에서 그들의 주장이 유리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드라마의 내용에 일제가 조작한 지도가 삽입되면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불리해진다”며 “오랜 논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역시 일제가 조작한 지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의 교과서나 드라마에서 그대로 보여준다면 그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것과도 같다”고 신랄한 비판을 이었다.


이에 복 교수는 자신이 앞으로 꼭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로 ‘사극드라마 참여’라고 전했다. 일본이 조작한 역사가 아닌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에 실려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사극을 만들면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홍보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올바른 역사로 자부심 갖길”

고구려에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국경사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복기대 교수는 지난 2022년 자신의 고향인 충남 홍성에 ‘우리겨레박물관’을 개관했다. 민족 형성기부터 고조선, 고구려, 조선까지 이어지는 내용을 담은 ‘우리겨레박물관’은 복 교수가 30년간 국내외로 모으고 기증을 받은 자료 중 3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박물관을 열 계획은 없었지만 형편상 멀리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마음이 컸다.


그는 “많은 분들이 아직 오진 않지만 대부분 오면 4시간 이상 있다가 간다. 처음에는 작게 하려고 했는데 형편상 우리의 역사 현장을 가기 어려운 이들이 왔을 때 자격지심이 느껴지지 않도록 제대로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지금과 같이 만들게 됐다”면 “앞으로 박물관을 조금 더 넓게 만들어서 학생들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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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대 교수가 개관한 우리겨레박물관



그러면서 그는 “시민사학의 시대가 왔다. 지식이 모든사람들에게 공유가 되면 좋은 세상이 온다. 10년, 20년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법 테두리 안에서 역사학을 풀어놓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천문학을 갖고 있었다. 그것들을 복원하고 싶다. 천문학으로 우리만큼 발전한 나라가 없었을 것”이라고 소망을 전했다.


“올바른 역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가 굉장히 훌륭한 과학의 민족이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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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 지도교수님과 함께 찍었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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