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인물 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국악애호가 정창관 선생
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국악애호가 정창관 선생
고음반 속에 피어난 국악의 향기
전통의 숨결을 되살리다
글·사진 장수경
정창관 선생이 100년이 넘은 유성기에 원통음반을 넣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책장 사이의 국악 음반 CD와 서적들. 사이사이로 놓인 원통 음반들.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아리랑’ ‘1916년 고려인 아리랑’ ‘봄날은 간다’ 등 각기 다른 시대와 스타일의 음반들이 책장을 채우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음반들은 역사와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정창관 선생은 조심스럽게 원통 음반 하나 집어 들고 100년이 넘은 에디슨 유성기에 넣는다. 숙련된 손길에서 음반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니 잠시 후 옛스럽고 고즈넉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치 1900년대 어느 찻집에 들어선 듯한 황홀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곳은 단순한 음반 수집 공간이 아니다. 한국 전통 음악의 살아 숨 쉬는 역사이자, 정창관 선생의 오랜 시간과 노력이 담긴 국악의 보고(寶庫)다. 그의 연구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타임캡슐처럼,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한 감동이 전해진다.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음반이 없어서
사지 못했던 거죠. 우리 음악의 현실이
이런데, 나는 다른 나라의 음악만 듣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화관문화 훈장
클래식 마니아, 국악에 빠지다
국악애호가이자 한국고음반 수집가이자 연구가인 청우 정창관 선생은 한국 전통 음악의 역사를 지키고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경남 창녕 출생으로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일은행과 HSBC은행에서 30년간 근무했다. 현재는 정에이앤비 대표로 활동 중이다. 그는 ‘정창관의 국악 CD 음반 세계’와 유튜브 채널 ‘정창관의 아리랑’을 운영하며 아리랑과 국악의 대중성을 높이고 있다. 2020년에는 유사이래 처음으로 ‘국악 애호가’라는 이름으로 문화훈장(화관)을 받았다.
원래 그는 클래식 마니아였다. 1975년 군에서 제대 후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있었고, 수집가답게 다양한 클래식 음반을 사 모았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 5번 음반만 무려 500장을 모았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각기 다른 지휘자와 연주자가 연주한 음반들은 저마다 매력이 있었고, 이는 그를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했다. 외국의 유명한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도 열심히 참석했으며, 지휘자 ‘로린 마젤’ ‘콜린 데이비스’ ‘유진 오르먼디’ 등 거장들의 사인을 받아낼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랐다.
그러다 30대에 국악음반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어느 날, 국악이 듣고 싶어 자주 방문하던 종로 3가 신나라 레코드 음반 가게에 발을 내딛는다. 그 많은 클래식 음반들을 뒤적이다가 국악 음반은 10장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인근 다른 음반가게도 방문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음반 제작자들은 국악 음반이 잘 팔리지 않아서 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음반이 없어서 사지 못했던 거죠. 우리 음악의 현실이 이런데, 나는 다른 나라의 음악만 듣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1988년 또 다른 국악 애호가인 양정환, 배연형 선생을 만났다. 이들은 서로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다지며 신나라 레코드를 통해 <판소리 5명창(1988)> 음반을 발매했다. 이동백의 새타령 등 명창 5명의 판소리를 LP 음반으로 복구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음반이 1000장도 안 팔리던 시절이었죠. 안 팔리면 모두 구매하겠다는 조건이었는데 무려 5500장이나 팔렸어요.”
정창관 선생이 모은 국악 CD 음반이 벽장에 빼곡하게 모아져 있다.
그 무렵, 국내는 서서히 국악 음반 제작 붐이 일었다. 신나라 레코드, 성음 제작소는 물론 LG, 삼성에서도 국악 음반을 내놓았다. 이때 보다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1989년 한국고음반연구회(회장 이보형) 모임을 창설했고, 현재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국악 음반 되살리다
정창관 선생은 사비를 털어 매년 하나씩 국악음반을 15년간 제작해 왔다. 1998년 가야금 명인 강순영 선생의 음반을 시작으로, 1999년 명창 조순애 선생, 2000년 은율 탈춤의 악사인 김영택 선생의 음반 등을 제작해 잊힐 뻔한 소리를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갔다.
“은율 탈춤의 악사 김영택 선생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분을 직접 찾아가서 녹음했고, 음반이 나와서 다시 찾아가 선물로 드렸어요. 음악을 들으시던 김영택 선생은 ‘저거는 조금 더 빠르게 녹음했어야 하는데’하고 이야기를 하셨죠. 그리고 일주일 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문상을 갔는데 음반을 들으며 편하게 돌아가셨다고 전해 들었어요. 선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녹음 음반이었어요. 영영 사라질 뻔한 소리를 담아 전해 줄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향 경남 <창녕아리랑>도 새롭게 재탄생했다. 2006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한민족 최초의 음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던 중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1930)>에서 <창녕아리랑>이 있었다는 기사를 발견한다. 하지만 여기에 담긴 것은 가사 2소절과 ‘남녀흥(興) 쾌조(快調·명랑하게)’라는 짧은 정보뿐이었다. 수소문을 했지만 <창녕아리랑>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정창관 선생은 사비를 털어 소리꾼, 작곡가, 작사가를 섭외했고 새로운 <창녕아리랑>을 세상에 내보냈다.
정창관 선생은 LP가 저물고 CD가 등장하는 시대의 중심에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아날로그 LP 음반에서 디지털 CD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1987년 3월부터 국악 CD가 발매되기 시작했으며, 그 기술적 혁신은 음악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89년부터 정창관 선생은 국악 CD를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고, 현재 약 6500장의 국악 CD를 보유하고 있다.
“모든 음반 분야가 CD 시대를 맞이했지만, 그전의 음반(SP와 LP음반)들은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음반을 수집한 사람은 있으나 그 규모가 공개되지 않아 전체 양을 가늠할 수 없었죠. 다행히 국악 CD는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모을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무조건 음반을 샀고, 비매품 음반들은 수소문을 통해 확보했어요. 초창기에는 비매품 음반을 찾는 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저에게 먼저 연락이 오고 있죠.”
모아진 음반은 벽장에만 쌓아두지 않는다. 1997년부터 운영한 ‘정창관의 국악 CD음반 세계’에 방대한 음반을 정리해 업데이트 한다. 이는 국악 CD 음반의 손실을 막고,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00년 초부터 2023년까지 매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23년간 국악음반을 업데이트했다. 어느 나라의 민족음악 음반이 매주 출반될 수 있을까. 정창관 선생은 이를 ‘작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또 18년간 국악방송에서 ‘정창관의 음반에 담긴 소리향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매주 새 음반 3장씩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국악음반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해외 박물관과 세계 주요 도서관에 국악 음반을 기증하기도 한다. 미국 의회도서관, 미국 인디아나대학 전통음악자료관, 일본 오사카 민족학 박물관, 동경예술대학 도서관, 영국 SOAS대학 도서관, 대만대학교 도서관 등이다. 이곳에 보내진 국악 CD음반만 4871장에 이르고 있다.
원통음반
우리 민족의 최초의 원통음반(1896년)을 정창관 선생이 직접 CD에 담아냈다.
‘정창관의 아리랑1’ 유튜브 채널
“국악 음반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세계 유명 박물관과 도서관에 국악 음반을 보내는 것은 제일 값싸고 효과적으로 국악을 알리는 방법이죠. 많은 사람들은 우리 것을 이용할 것이고, 그곳에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 우리 악사들이 갔습니다. 그때 악사들이 기증한 악기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악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기증한 음반이 오래 오래 남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바랍니다.”
아리랑 집대성 꿈꿔
그는 민족의 노래 <아리랑> 집대성을 꿈꾸고 있다. 2018년부터 유튜브에 ‘정창관의 아리랑’ 채널을 개설해 음원을 올리기 시작했다. 현재 4450곡을 올렸고,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상연 100년이 되는 2026년 10월까지 5000곡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리랑은 장르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접근성을 높였다. 일제강점기의 유성기 음반도 78%(155종 중 115종) 정도 올려 <아리랑> 역사의 중요성도 함께 알리고 있다.
“사람은 삶에 대한 어떤 가치나 목적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삶을 살았을 때 뭘 하고 갈 것인가에 대해 항상 생각했어요. 그러다 ‘국악 CD 음반은 정리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이제 정리가 다 돼 가고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 목표가 <아리랑>을 유튜브에 올리는 것입니다. 저는 누구나 쉽게 우리 국악과 <아리랑>을 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정창관 선생이 작업공간에 앉아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정창관 선생은 국악 CD 음반 수집과 정리를 계속하며, 유튜브에 <아리랑> 음원을 올리는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또한 <밀양아리랑> 음반에 관한 책을 10월에 출간할 예정이며, 앞으로 10권의 책을 집필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국악의 매력을 물었다.
“처음 국악에 입문했을 때는 ‘클래식도 좋지만 국악도 참 좋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국악과 클래식의 매력을 모두 느껴가고 있습니다. 클래식이 꽉 찬 음악이라면 국악은 여백을 가진 음악이죠. 저는 한국인들이 K-팝도 듣고 클래식도 들으면서 우리 국악도 조금씩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국악을 좋
아할 유전자가 있다고 믿습니다. 국악의 발전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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