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인물 ㈔도와지와 ‘2024 장애인 미술 아트페어 LENTEMENT’
㈔도와지와 ‘2024 장애인 미술 아트페어 LENTEMENT’
우리의 아름다움은
‘느리게·천천히’ 피어난다
글 백은영 사진 김예슬 사진제공 ㈔도와지
조금은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이 가진 재능을 펼쳐가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새하얀 캔버스에 저마다의 꿈을 그려나간다. 밝고 화려한 색채로 채워진 작품에서는 순수함이, 복잡하고 정밀하게 그려진 작품에서는 놀라움이 느껴진다. 그렇게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 작품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지난 11월 1일 시작해 12월 30일까지 롯데월드 서울스카이 120층에서 진행되는 ‘2024 장애인 미술아트페어 LENTEMENT(렁트멍)’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다양성과 참신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아트페어에는 장애예술인 49명의 작품 147점이 관객을 맞는다. 이미 새로운 주인을 만난 작품들도 많다.
‘LENTEMENT’은 프랑스어로 ‘느리게’ ‘천천히’라는 뜻이다. 발달 장애를 가진 청년예술가들이 전문 작가로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렁트멍 아트페어’가 장애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시각과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조명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2024 장애인 미술 아트페어 LENTEMENT 전시 모습
장애예술 대중화에 기여
‘2024 장애인 미술 아트페어 LENTEMENT’은 향후 한국장애미술계를 이끌어갈 유망 예술가들의 참신하고 다양성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이번 렁트멍 아트페어는 현재 장애미술 시장에서 독창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한 주목받는 40세 미만의 장애청년 예술가의 창작 특징을 반영해 전시 초반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렁트멍 아트페어’는 장애예술가들의 창작활동과 작품활동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작품판매를 통해 장애예술가들의 자립지원 방안 및 장애예술의 대중화에 목적을 두고 있다. 지난 2022년 9월에 이은 두 번째 행사다.
“장애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갖게 되면 창작의욕 역시 더욱 높일 수 있다. 또한 렁트멍 아트페어가 국내외적으로 장애미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행사를 주최·주관하는 사단법인 도와지(圖와知) 안태성 대표는 렁트멍 아트페어가 장애예술가들의 창작의욕을 높일 뿐 아니라 장애미술을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번 아트페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후원하고 ㈔도와지가 주최·주관하는 행사로 롯데월드 서울스카이가 장소를 후원했다. 이미 서울의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스카이에서 진행되는 만큼 작품 판매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서울의 전망을 내려다보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방문객의 이동 동선을 따라 120층 북쪽 스카이테라스와 라운드 월에 작품을 배치하는 등 세심함이 느껴지는 전시다. 이번 행사와 관련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장애예술인 창작활동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예술을 통한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준다”며 “특히 청년들이 중심이 돼 구성된 이번 아트페어에는 젊은 장애예술인들만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이 출품돼 관객들이 새로운 예술적 자극과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도와지에서 만난 장애 청년예술인들과 이재순 도와지 부대표(뒷줄), 성현석 도와지 사무국장(앞줄 맨 왼쪽)의 모습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김형희 이사장은 “이번 아트페어는 장애로 인해 창조적인 예술 활동에는 느리지만 그래도 천천히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장애예술인들에게 작품을 제작, 전시, 판매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도 장애예술인들이 마음 놓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장애예술의 무한한 가치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꿈에 날개를 달아주는 ㈔도와지
사단법인 ‘圖와知(도와지)’는 홍익대 미대 출신인 안태성·이재순 화백 부부가 만든 비영리법인으로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외계층의 문화예술 향유 및 창의력 함양을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원을 위해 설립됐다. 2007년 3월 시작된 자조모임 ‘外人(외인)부대’가 모태가 됐다. 이후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 2013년 1월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圖와知(도와지)’를 발족, 지난 2017년 11월에는 서울시 비영리법인 ‘도와지’로 거듭나면서 장애예술인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장애청소년들이 사회적 장애로 인해 겪게 되는 심리·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고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기회를 확대·제공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이 문화예술 관련 전문 직업인으로 성장·활동할 수 있도록 전문적이고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둔다.
청각장애 4급인 안태성 도와지 대표가 장애로 인한 차별대우로 청강문화산업대 재임용에 탈락한 것이 장애예술인의 활동과 자립을 돕는 계기가 됐다. 부당해고 이후 부인 이재순 도와지 부대표는 교수노조와 장애인단체를 찾아다니며 차별과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는 등 ‘투쟁가’로 변신했다. 그렇게 장애인 인권을 위해 거리로 나서다보니 자연스레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장애예술인들을 위한 사회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저력이 이번 아트페어 행사를 주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결코 쉽지 않은 행사에 업무량도 만만치 않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24 장애인 미술 아트페어 LENTEMENT 전시 모습
지난 11월 도와지 사무실 겸 작업실에서 만난 이재순 부대표는 “2024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한국과 프랑스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한불 특별교류전 ‘블랑(BLANC)’에도 참여하는 등 참 바쁘게 지낸 한해였다”며 “이번 렁트멍 아트페어도 신경 쓸 일이 많아 사무국장님이 고생이 많으셨다. 이미 전시에 다녀간 분들이 SNS 등 댓글로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보이고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번 아트페어의 사업담당자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성현석 도와지 사무국장은 작업실에 방문한 기자들에게 도와지의 설립부터 활동사항, 나아가 활동하면서 느꼈던 어려운 부분들을 설명하며 진솔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도 도와지 설립 초기에 비하면 지금은 장애예술인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진 편이라면서 웃어보였다. 무엇보다 도와지를 거쳐 간 많은 청소년, 청년 장애예술인들이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모습, 여러 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며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고 전했다.
정부미술은행 활성화됐으면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 미술 아트페어는 여느 때에 비해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애인 미술아트페어가 진행된다면 ‘도와지처럼’ 해야 한다”와 같은 평이 쏟아지는 것은 도와지가 장애예술인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있어 언제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아트페어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부 지원사업인 만큼 작품 전시 및 판매 등에 있어서도 좀 더 관심을 갖고 참여했으면 하는 부분이다.
“정부미술은행이라는 곳이 있어요.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은 문화체육관광부 정부미술은행의 소장품으로 수집할 수 있는 제도죠. 각 관공서 등 공공기관에서도 창작지원 활성화 차원에서 미술작품을 구입할 수 있지만 잘 안 되고 있는 부분이 아쉬워요. 관련 공문을 보내는 것도 저희(도와지) 쪽에서 하고 있지만, 정부(문체부 관할 부서)에서 보내는 공문과는 그 인식부터가 다르죠.”
이재순 도와지 부대표는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도 장애예술인의 창작활동 지원(제9조) 및 장애예술인의 창작물 우선구매(제9조의2) 제도가 법령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이번 아트페어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 지원이 미미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도와지 작업실에서 만난 장애 청년예술가들의 모습이 밝고 활기가 넘쳐서인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작가로서의 자부심과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표장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길, 그 길에는 결코 그 어떤 경계도, 한계도 없음을 도와지에서 만난 작가들을 보며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도와지에서 작업 중인 장애 청년예술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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