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호 인물 못생긴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
못생긴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
글 신현배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그는 신이든 요정이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여자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반드시 자기 여자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여자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속을 끓이는 것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였다. 그녀는 제우스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며 돌아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치밀었다.
‘남편 때문에 미쳐 버리겠어. 왜 자꾸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거지? 돌아다니지 못하게 집 안에 묶어 둘 수도 없고….’
헤라는 남편이 너무너무 미웠다. 그녀는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혼자서 아이를 갖기로 했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은 약이 올라 어쩔 줄 모르겠지? 다른 남자를 만나 아기를 가진 것으로 알 테니 말이야. 그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통쾌한걸.’
헤라는 남편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없었다. 제우스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잠자리를 피하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자라 자기를 쫓아내고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그는 아내와 밤을 같이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헤라가 아이를 낳은 것을 알면 제우스는 그녀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 아이를 낳았다고 여길 것이 틀림없었다.
헤라는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혼자서 아이를 가졌다. 능력 많은 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없는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바로 헤파이스토스다.
헤라는 갓 태어난 헤파이스토스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하게도 못생겼기 때문이다. 제우스의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닮아 상당한 미남이었을 텐데 헤파이스토스는 헤라가 혼자서 만든 자식이라 그런지 눈뜨고 볼 수 없는 추남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는 울음소리까지 미웠다. 돼지 멱따는 소리라서 듣기 괴로웠다.
‘맙소사! 나한테서 어떻게 저런 아이가 태어났지? 실패작이야. 저런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해.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헤라는 헤파이스토스를 낳은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얼마나 못생겼던지 쳐다보기도 싫었다.
‘저런 아이는 나한테 필요 없어. 내가 낳았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니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리자.’
헤라는 아기를 안은 채 올림포스 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아기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헤라는 아기를 산 밑으로 던져 버리기 전에 아기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들여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못생긴 얼굴이었다.
‘아유, 속상해. 이 녀석만 보면 짜증이 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놈이야.’
헤라는 아기에게 아무 미련이 없었다. 망설임 없이 아기를 올림포스 산 밑으로 던져 버렸다.
헤파이스토스는 아래로 떨어졌다. 산이 어찌나 높은지 바다로 풍덩 빠지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헤파이스토스는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았는데도 죽지 않았다. 바다의 신 테티스가 그를 건져주어 렘노스 섬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렘노스 섬에는 동굴이 있었다. 테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동굴로 데려다가 키웠다. 헤파이스 토스는 테티스의 사랑을 받으며 쑥쑥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다. 무슨 물건이든 척척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테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위해 대장간을 차려 주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이 대장간에서 귀고리·팔찌 등 여러 장식품과 신들을 위한 무기를 만들었다. 그의 손을 거치면 만드는 물건마다 쓸모 있는 명품이 되기에 모두들 그의 발명품을 좋아했다.
하루는 테티스가 올림포스 궁전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목걸이를 걸고있었다.
헤라가 목걸이를 보고 감탄을 했다.
“목걸이가 참 멋지네요. 어디에서 얻었죠?”
“제가 돌보는 헤파이스토스라는 아이가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 아이는 누군가에게 버림받아 바다에 풍덩 빠졌는데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에요. 무엇이든 쓸모 있는 물건으로 척척 만들어내요. 얼굴이 못생긴 대신 그런 큰 재주를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워요.”
헤라는 깜짝 놀랐다.
‘내가 버린 아가가 테티스 여신 밑에서 자랐구나.’
헤라는 헤파이스토스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를 올림포스 궁전으로 불러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테티스 앞에서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테티스는 헤라가 헤파이스토스의 어머니임을 알고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테티스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는 갓난아기 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올림포스 궁전에서 돌아온 테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헤라를 만난 일을 이야기했다. 헤파이스토스는 문득 어머니 헤라와 함께 올림포스 궁전에서 살고 싶어졌다.
‘어머니는 나를 다시 불러들일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올림포스 궁전에서 살려면 꾀를 써야한다.’
헤파이스토스는 무슨 생각인가 골똘히 하더니 갑자기 의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황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의자였다.
헤파이스토스는 의자에 그물을 쳐 놓았다. 그물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았다. 헤파이스토스 말고는 그물을 아무도 떼어낼 수 없었다.
헤파이스토스는 황금 의자를 올림포스 궁전으로 보냈다.
“헤파이스토스가 헤라 님에게 바치는 선물입니다.”
심부름꾼이 헤라를 만나 의자를 바치자 헤라는 입이 함박만 해졌다. 황금 의자가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신들도 의자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멋진 의자예요! 황금으로 장식하다니 훌륭해요.”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최고의 명품이에요. 헤라 님, 어서 앉아 보세요.”
헤라는 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의자는 푹신하고 편안했다. 한번 앉으면 일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참 앉아 있다가 일어서려는데 보이지 않는 그물이 헤라의 엉덩이를 옭아매어 일어설 수가 없었다. 헤라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엄마야!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
헤라를 의자에서 떼어내려고 신들이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헤파이스토스를 올림포스 궁전으로 불렀다.
헤파이스토스가 헤라에게 말했다.
“헤라 님을 의자에서 떼어내 드리지요. 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저를 올림포스 궁전에서 살도록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다. 올림포스 궁전에 와서 사는 것을 허락하니 어서 나를 의자에서 떼어내 다오.”
헤라가 허락하자 헤파이스토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벗겨냈고 헤라는 의자에서 해방되었다.
그날부터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궁전에서 살았다. 근처에 대장간을 세우고 온갖 물건을 만들었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의 신으로서 다른 신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는 신들에게 명품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헤파이스토스는 결혼을 하여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맞이했다. 아프로디테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미의 여신이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올림포스 궁전에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불행이 닥쳤다. 제우스와 헤라가 부부 싸움을 할 때 헤파이스토스는 헤라 편을 들었는데 그것이 제우스의 화를 돋웠다.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올림포스 산 꼭대기에서 밑으로 던져 버렸다. 헤파이스토스는 하루 종일 떨어져 렘노스 섬에 닿았다. 이때 신이라서 죽지 않았지만 다리를 크게 다쳐 절름발이가 되었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전보다 더 열심히 발명에 힘을 쏟았다.
뒷날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의 용서를 받아 올림포스 궁전으로 돌아갔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헤파이스토스는 신들이 인정하는 훌륭한 발명가였다. 그는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가 쓰는,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황금 모자를 비롯하여 태양신 아폴론이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황금 마차, 프로메테우스를 묶는 데 쓰인 쇠사슬, 대장간에서 자기 일을 돕는 황금로봇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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