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인물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돌고래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돌고래
글 신현배
그리스 신화에서 넓은 바다와 물속 세상을 다스리는 신은 포세이돈이다. 물고기들은 포세이돈을 왕으로 모시며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답게 그 성정이 바다를 닮았다. 평상시에는 그의 얼굴이 평소의 바다처럼 고요하고 차분해 보였다. 하지만 화난 일이 있을 때는 전혀 달랐다. 성난 바다처럼 길길이 뛰고 고함을 질렀다. 그럴 때는 신하들도 겁에 질려서 허둥지둥 몸을 피했다.
포세이돈은 다른 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파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늘 혼자 조용히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포세이돈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파티에 가고 싶어졌다. 나녹스 섬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오늘따라 너무 심심하고 따분해서 파티에 가 봐야겠어. 파티장에는 좋은 구경거리가 기다리고 있겠지?’
포세이돈은 이런 생각을 하고 궁전을 나섰다.
그런데 그는 파티에 가면서 몸단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머리도 빗지 않아 헝클어진 모습 그대로였고, 길고 흰 수염도 다듬지 않았다. 험상궂은 얼굴로 삼지창을 들고 파티에 갔다.
파티장에 들어선 포세이돈은 갑자기 눈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무대에는 한 처녀가 춤을 추고 있었는데 몹시 아름다웠다. 그 처녀는 바다의 요정으로 포세이돈에게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포세이돈은 넋을 잃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요정을 보았지만 저처럼 아름다운 요정은 처음이야.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지?’
포세이돈은 그 요정이 누군지 궁금해, 그 자리에 있던 신하에게 넌지시 물었다.
“저 요정이 누구지?”
신하가 대답했다.
“암피트리테예요. 언니들이 많이 있는데 함께 파티에 왔대요.”
“으음, 그랬군. 춤 솜씨가 보통이 아닌걸. 얼굴도 예쁘고…. 아주 매력적인 요정이야.”
포세이돈은 암피트리테를 보자마자 깊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아, 내 사랑 암피트리테! 내가 자기를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겠지? 이대로 그녀와 헤어질 수 없어. 내 사랑을 고백해야 해.’

포세이돈은 격정에 사로잡혀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삼지창을 들고 암피트리테에게 다가갔다. 암피트리테는 무용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는 거인처럼 키가 크고 험상궂은 모습의 사내가 다가오자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공포에 젖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서워하지 마. 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야.”
포세이돈은 자기가 누군지 밝히고 암피트리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처음 그대를 보았지만 그대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말았어. 암피트리테, 사랑해. 나와 결혼해 줘.”
암피트리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포세이돈을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 본 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청하다니,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포세이돈은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잠시도 그의 곁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암피트리테는 포세이돈의 손을 뿌리치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언제 봤다고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을 청해요? 별꼴이야!”
그녀는 포세이돈을 노려보더니 언니들 쪽으로 달아났다. 그러고는 언니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저 남자 누구야? 못생긴 주제에 자기와 결혼해 달래. 참 어이가 없어서….”
포세이돈은 암피트리테의 말을 듣고 몸 둘 바를 몰랐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수치심이 느껴졌다.
‘내가 못생겼다고?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하지. 내가 이제까지 외모에 신경 쓴 적이 없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몸단장을 하고 파티에 오는 건데.’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암피트리테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포세이돈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궁전에 돌아왔다. 그는 궁전의 자기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포세이돈이 가장 아끼는 신하는 돌고래였다. 돌고래는 포세이돈이 일주일째 방에서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포세이돈 님이 왜 저러시지? 어디 편찮으신가?’
돌고래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포세이돈을 찾아갔다.
“어디 편찮으세요? 일주일 동안 방 안에만 계시니….”
돌고래가 조심스레 묻자 포세이돈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병에 걸렸어. 약도 없는 상사병에….”
“그게 정말이세요? 상대가 누구죠?”
“요정 암피트리테…. 나녹스 섬에서 열린 파티에서 처음 만났지.”
포세이돈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신하에게 파티장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난 암피트리테를 처음 본 순간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졌어. 그만큼 그녀를 뜨겁게 사랑했던 거야. 하지만 그 사랑 고백이 실패로 끝났으니….”
포세이돈은 아쉬움이 큰 듯 끝내 눈물을 쏟고 말았다.
돌고래는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포세이돈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를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포세이돈 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암피트리테를 만나 볼게요.”
포세이돈은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 주겠니? 암피트리테를 잘 설득하여 나와 다시 만나게 해 주렴. 너만 믿는다.”
“예. 좋은 소식을 가져올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돌고래는 포세이돈을 위로하고 요정을 찾아 나섰다.
돌고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암피트리테를 찾아냈다. 암피트리테는 언니들과 어울려 파도를 타며 놀고 있었다.
돌고래는 암피트리테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소문 들으셨나요? 바다의 신이 어느 요정을 사랑한다는….”
돌고래는 이렇게 운을 뗀 뒤 포세이돈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바다의 신은 겉으로 보기엔 징그럽고 못생긴 것 같지요. 하지만 마음씨는 얼마나 착하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실제로 겪어 본 이들은 깜짝 깜짝 놀라요. 보기와는 딴판이니까요. 바다의 신에게 잘 보여 결혼에 성공한다면 그 여자는 복이 넝쿨째 들어온 셈이에요. 어디 가서 바다의 신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없거든요.”
돌고래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포세이돈을 칭찬 했다.
암피트리테는 돌고래의 말을 듣고 조금씩 마음이 움직였다. 포세이돈이 겉보기와는 달리 착하고 좋은 신이라서 한번쯤 만나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고래는 암피트리테의 마음을 읽고 넌지시 권했다.
“어때요? 말이 나온 김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님을 만나러 갈까요?”
“좋아요. 같이 가요.”
암피트리테는 선뜻 돌고래를 따라 나섰다. 돌고래는 신바람이 나서 암피트리테를 포세이돈에게 데려다 주었다.
포세이돈은 암피트리테를 보자 뛸 듯이 기뻐했다. 너무 좋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포세이돈은 그녀와 만나기 전에 몸단장을 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성스레 빗었으며, 길고 긴수염을 깔끔하게 다듬었다. 옷도 화려한 옷을 입었다.
암피트리테는 포세이돈을 만나보고 깜짝 놀랐다. 나녹스 섬의 파티에서 만났던 바다의 신이 아니었다.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 앞에 서 있었다.
‘믿을 수가 없어. 어쩜 저리 달라 보이지? 저렇게 잘생긴 이를 못생겼다고 여겼으니…. 마음씨도 착하다고 하니 최고의 남자야.’
암피트리테는 포세이돈을 호감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슴에도 어느새 포세이돈에 대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 그리하여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곧 결혼식을 올렸다.
포세이돈은 돌고래가 매우 고마워 그에게 상을 내렸다. 사람들이 그를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늘로 올려 보내 별자리로 만들어 준 것이다. 이 별자리가 바로 ‘돌고래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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