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호 인물 한 호흡으로 이어온 삶 ‘해녀’
한 호흡으로 이어온 삶 ‘해녀’
글 백은영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김원석 연출, 임상춘 작가)>의 인기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제주 해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1950~1960년대에 제주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잠녀(해녀)로 평생 바당(바다)과 싸워야 한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바다 깊숙이 들어가 한 호흡으로 해산물을 채취하고, 수면 위로 올라와 힘겹게 내뱉는 그 숨소리를 ‘숨비소리’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작한 제주해녀상
표준모델 측면 모습(출처: 뉴시스)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 범섬 앞바다에서 물질을 마친 해녀가 테왁을 챙겨 뭍으로 나오고 있다.(출처: 뉴시스)
해녀와 물질
해녀는 한국 전통 해양문화와 여성 어로문화를 대표하는 존재로 시대적 변화를 넘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왔다. 해녀의 생업과 생활 속에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혜, 공유 자원의 지속적 이용과 공정한 분배에 관한 지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녀에 관한 기록은 17세기 제주도 관련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물질’은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전통 어로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랜 물질 경험에서 축적된 해양 생태환경에 대한 민속지식이 상당하고, 동료 해녀 간의 협력과 배려, 신앙과 의례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적 생활문화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다.
이처럼 해녀 문화는 역사성과 예술성, 고유성 등 다양한 가치를 지닌 무형유산으로 평가받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더불어 2016년에는 물질과 노동요 같은 독특한 고유 문화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도 등재됐으며, 세계가 주목하는 지속가능 어업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반면 오늘날 활동 인구의 급감 및 고령화와 기후변화는 해녀 문화의 지속성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특히 제주 해녀문화는 한국의 대표적 무형문화유산으로 꼽힌다. 과거 1만 5000명에서 2만 명에 달했던 해녀 인구는 오늘날 3000명 안팎으로 줄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활동 해녀 수는 2839명에 불과하며, 평균 연령대는 60~70대다. 생업으로 바다에 나서는 이들의 수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해녀와 비슷한 개념으로 일본에는 ‘아마(海女)’라 불리는 여성 잠수부 전통이 남아 있다. 미에현과 시마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마 역시 바다에 들어가 조개와 해산물을 채취한다. 일본 역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전통 잠수 문화는 양국 모두에서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 해녀문화의 고유성은 분명하다. 제주의 해녀문화는 단순히 물질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숨비소리’로 불리는 호흡법, 어장 규범, 잠수굿과 같은 의례, 공동체적 운영 체계까지 포괄한다. 바로 이러한 복합적 문화 요소가 유네스코가 ‘제주 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배경이다.
숨비소리에서 테왁·망사리까지
해녀의 물질은 고도의 신체 능력과 생태지식이 결합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산소통을 사용하지 않고 보통 1분 남짓 숨을 참은 채 수심 10m 내외의 바다에 들어가 조개, 전복, 해조류 등을 채취한다. 하루 작업 시간은 많게는 5~7시간에 달하며, 잠수와 부상을 수백 차례 반복한다. 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내뿜는 독특한 호흡 소리가 바로 ‘숨비소리’다. 이는 해녀의 안전을 확인하는 신호이자 공동체적 리듬을 상징하는 소리로도 전승됐다.
물질에는 전통 도구가 사용된다. 부력과 휴식처 역할을 하는 ‘테왁’, 채취물을 담는 ‘망사리’, 해초를 벨 때 쓰는 ‘호미’, 작업복인 ‘물소중이’ 등은 세대를 거쳐 개량되며 이어졌다.
기술뿐 아니라 해녀가 지닌 생태지식은 과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금어기와 금지체장을 지키며 자원 남획을 피하고 바람과 조류, 해류 변화를 감지해 안전을 도모한다. 바다는 해녀에게 ‘바당밭’으로 불리며 농경과 유사한 관리개념이 적용된다. 즉 바다를 공동체가 관리하고 규칙을 어길 경우 제재가 뒤따른다.
한편 해녀는 숙련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구분되며 그 기술은 철저히 경험과 전승을 통해 이어진다.
여성 노동과 공동체 경제
해녀는 오랜 세월 제주 경제와 거정의 생계를 떠받쳐 온 존재다. 농사가 척박했던 제주에서 해녀의 소득은 가족 생계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노동은 개인이 수행했지만 안전 규칙과 어장 관리, 수익 분배는 공동체 단위로 이뤄졌다.
마을마다 존재했던 ‘어촌계’는 공동의 어장 규칙을 정하고갈등을 조정하며 수익을 분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어장을 관리하는 공동체 시스템은 경제적 지속성과 생태 보전을 동시에 가능하게 했다.
해녀문화는 경제적 기능을 넘어 사회적 연대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1931~1932년 일제 수탈에 맞서 일어난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연인원 1만 713명의 해녀들이 238회에 걸쳐 궐기한 해녀항일투쟁이다.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 주도의 항일운동이기도 하며, 전국 최대의 어민운동, 1930년대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했던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순효(본명 고차동), 김계석 5인은 혁우동맹 산하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들로 야학을 통해 민족교육을 받았으며, 청년 민족운동가들과 연계해 제주해녀항일운동을 단순한 생존권 투쟁의 차원에서 항일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데 공헌했다. 이들은 일제 경찰의 폭력진압에 의해 동료 해녀 30여 명과 함께 구속된 이후에도 자신들이 주모자임을 자임해 동료 해녀들을 석방시키는 등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이끈 해녀 대표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이들은 2003년과 2005년에 건국포장을 받고 독립유공자로서 인정받게 됐다.
제주시 구좌읍 해녀항일운동기념탑 광장에서 열린 ‘제주해녀항일운동 제91주년 기념식’에서 해녀 및 참가자들이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또한 해녀들은 작업 전 바다의 안전을 기원하는 ‘잠수굿’을열었고, 물질 중 부르는 노동요와 서우젯소리는 신앙과 공동체 정신이 결합된 상징이었다. 오늘날 해녀박물관과 축제는 이러한 문화적 요소를 계승하며 지역 경제의 새로운 자원이 되고 있다. 올해 제주 해녀축제는 10월 17~19일까지 3일간 제주 구좌읍 제주해녀박물관에서 개최된다.
해녀문화, 그 남은 과제
오늘날 해녀문화가 직면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활동 해녀의 평균 연령은 60대 후반으로 젊은 세대의 참여는 미미하다. 제주도는 ‘해녀학교’를 운영해 후계 세대를 양성하고 있지만 전체 인구 감소 속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후변화도 해녀문화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다. 해양 수온 상승, 해조류 감소, 갯녹음 현상 등으로 해녀들이 채취하는 전복, 소라, 해초류 자원이 급격히 줄고 있다. 이는 생업의 어려움으로 이어져 젊은 세대의 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한편 해녀문화는 다큐멘터리와 국제 보도를 통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물숨>은 해녀들의 삶을 7년간 기록해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BBC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해외 언론도 해녀를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 호흡으로 이어온 해녀의 삶. 그들의 ‘숨비소리’에는 가족이라는 커다란 무게가 얹혀 있었다.

다큐멘터리 <물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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