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인물 한지화의 선구자 ‘함섭’

10일 전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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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화의 선구자 ‘함섭’


글·사진 김정인 로아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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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섭

출생: 1942. 11. 30 강원도 춘천

사망: 2024. 2. 27


수상

1975년 제13회 한국미술협회전 동상

1974년 제10회 한국미술협회전 현대미술관장상


경력

한지와 정신전 추진위원장,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오리진회화협회 명예회원, 강원도 미술대전 심사위원

부산일보 미술대전 심사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초대작가


활동

전시,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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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스페인 국왕, 함섭. ARCO아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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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록펠러 주니어 회장 부부와 함섭(가운데) 작가



1942년 춘천에서 태어났으며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나왔다.


이후 중·고등학교 미술교사로 활동하다 50대를 앞두고 회화작가로 본격 전향하여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특히 한국 전통 오방색을 활용한 한지 회화에 천착, 한지를 활용한 추상화를 제작하며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2010년에는 고향 춘천으로 돌아와 70세에 춘천 신동면에 있는 김유정문학촌 일대에 ‘함섭 한지아트스튜디오’를 개관했다.


2013년 원주 한지 테마파크 초대전을 비롯해 홍콩,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의 해외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가지며 한지의 미학을 알리는 데 기여해왔으며,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 바젤 아트페어, 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 등 세계적인 대형 미술 시장에 초대된 후 한국의 얼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이런 세계적 무대에서 늘 솔드아웃 되고, 스페인 국왕부부가 그림을 관람하러 오고, 미국 록펠러재단과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21년부터 간암 투병 중에도 강원화단을 지켰다.


2023년 서울 갤러리 라메르에서 처음 열린 ‘2023 강원갤러리 특별초대전’ 초대 작가로 참여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작업과 미술 발전에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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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업실



작품세계

종이에서 태어나 종이에서 죽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태어나면 종이로 꼬아 만든 금줄이 걸리고, 죽으면 종이 수의를 입힌다.


집의 바닥과 벽, 창문도 종이고, 옷·모자·허리띠·신발, 심지어 물통까지 종이로 만든다.


‘종이의 나라’ 우리는 잘 몰랐지만, 우리 조상들의 삶이 종이라는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서는 그들의 기호에 맞춰 개발된 유화가 있고, 백남준 화백이 비디오 아트를 만들어낸 것처럼, 작가도 한지의 물성과 가변성을 이용한 한지화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함섭(1942∼2024) 작가가 그 선구자이다.


작가는 365일 작업실을 떠나지 않는다.


작업실을 비우면 그 맥이 끊어져 작품이 새롭게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밖에 볼일이 있을 때는 이른 새벽이나 저녁 늦게라도 작업실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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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husiasm 8697> Korean paper 112×142㎝ 1986 도록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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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husiasm 92101> Korean paper 82×64㎝ 1992 도록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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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husiasm 9267> Korean paper 182×182㎝ 1992 도록 수록



<신명 Enthusiasm>, (1980~1995)

초기 한지화의 출발(신명 Enthusiasm)은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힘과 깊이를 가진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한지가 주는 편안함과 따듯함, 오방색과 힘찬 먹선의 대비, 닥나무의 거친 섬유 질감과 부드러운 한지의 대비, 여느 한지 작가들과는 다르게 ‘함섭’만의 한지화의 시작이었다.


한국인의 정신과 얼 그리고 문화와 놀이를 가장 한국적인 재료로 신명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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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Dream 98169> Korean paper 95×163㎝ 1998 로아 갤러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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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Dream 98110> Korean paper 131×161㎝ 1998 도록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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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Dream 2040> Korean paper 132×163㎝ 2000 로아 갤러리소장



<한낮의 꿈 Day Dream>, (1996~2012)

“그저 종이와 나 자신이 캔버스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 스며서 한지의 내면을 소유하고 싶다.”


작가의 마음을 완벽하게 바탕을 만든 게 Day Dr eam이다.


1996년부터 Day Dream이 시작되었다.

Enthusiasm과 다르게 캔버스가 아닌 1㎝ 깊이의 나무판에 한지의 물성을 완전히 파괴해서 합판에 던져 채우기 시작한다.

채워진 한지는 꽹과리를 치는 리듬으로 두드린다.


작가 자신을 그곳에 꽁꽁 숨기려는 듯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탕이 만들어지면 오방색 한지와 닥종이 고서 등을 붙이고 또 두드린다.


추상화가 서양에서 들어왔지만, 작가는 작품에 오롯이 우리 것만 담겠다는 마음으로 우리의 전통굿, 차례상, 싸리문, 시골 돌담, 서낭당의 분위기, 보름달과 강강술래, 나아가 국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놀이 한마당을 연상케 하는 우리의 문화를 가득 담았다.


하지만 이런 우리 문화의 작품이 표현되기 전 바탕만으로도 충분히 함섭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때부터 작가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국내가 아닌 국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아트바젤를 필두로 나가는 아트페어에서마다 솔드아웃을 기록했으며, 해외 유수의 갤러리들에서 초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서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한지 작업인데다, 우리 민족 고유의 흥과 리듬, 관객들로 하여금 내면 깊숙이 잠재된 에너지들을 토로하도록 하는 기운생동의 한마당이라는 점에서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색이 익어가고 깊어지는 게 이런 것, 인고의 세월을 꿋꿋이 견딘 큰 바위의 느낌, Day Dream에서 모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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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s Hometown 1524> Korean paper 195×16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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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s Hometown 1393> Korean paper 33×42㎝ 2013 JH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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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s Hometown> Korean paper 195 x 262 cm 2022 BHAK전시




<고향 One’s Hometown>, (2013~2024)

“내 작업에서 일련의 색과 면·선들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은 고향의 풍요다.


각 방위의 상징이자 수호의 표시인 오방색은 작품의 필수 요소다. 내 삶과 작품은 한결같이 한국적 정신에 입각한 것으로, 흥에 겨워 던지고 찢고 두드리는 행위 자체도, 한지라는 재료도 그렇다. 우리의 정체성과 그 심층구조를 논할 때 오색이 나부끼는 서낭당의 분위기, 사찰이나 궁궐의 원색 단청, 색동저고리, 치마를 입고 하늘을 날며 그네 타는 모습, 널뛰는 모습, 떡판의 오묘한 문양 등에서 모티브를 찾았다.”


2010년 작가는 고향인 춘천으로 작업장을 옮긴다.

귀향하여 고향(One’s Hometown)으로 작업 방식이 바뀌어 간다.


밝고 경쾌함이 화면에 두드러진다. 더러는 초가삼간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들이나 격자의 창호가 해체되어 안과 밖의 경계까지 허무는 자유로움을 구가하고, 색동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하늘을 날고 그네 타는 모습, 널뛰는 모습, 떡판의 오묘한 문양, 검정색 한지는 기운을 담기 위해 바닥으로 내려쳤다.


묵선은 리드미컬해졌으며 어떤 상황이나 모습도 고향은 모두 품어 주듯이 따뜻함과 절제된 부드러움이 작품에 가득하다.


함섭 작가가 늘 강조한 바탕은 그 자신마저 화면에서 지워버리는, 바로 화면의 안과 밖을 만남의 끈으로 잇는 곳이다. 우리는 작가가 만들고 펼쳐 놓은 마당에서 한바탕 우리의 문화를 즐기면 그만이다.


여기까지 함섭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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