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인물 북한 인권 영화감독 허영철 ㈜원코리아미디컴 대표이사 세계를 울린 ‘도토리’ 한 알

6일 전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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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영화감독 허영철 ㈜원코리아미디컴 대표이사

세계를 울린 ‘도토리’ 한 알


글, 사진 백은영 사진제공 ㈜원코리아미디컴 허영철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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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코리아미디컴 허영철 대표이사가 전쟁기념관에서 국군포로 관련 다큐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출처: ㈜원코리아미디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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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철 감독의 영화 <도토리> 촬영현장



작은 열매 하나가 세상의 양심을 두드렸다. 탈북민 출신 허영철 감독의 영화 <도토리>는 북한 여성들의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남과 북이 같은 ‘도토리’를 다른 의미로 기억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카메라로 분단의 상처와 통일의 염원을 기록한다.


‘도토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마다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다람쥐를, 또 다른 누군가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곁들이는 ‘도토리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대체로 평화롭고 따뜻한 이미지다. 반면 어떤 이들에겐 ‘도토리’가 고난과 결핍, 한(恨)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허영철 영화감독에게 있어 ‘도토리’는 후자에 가깝다.


㈜원코리아미디컴의 대표이사로 영화와 다큐멘터리, 광고 등을 제작하며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허영철 감독은 지난해 북한인권영화 <도토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각본부터 촬영, 편집까지 홀로 맡아야 할 만큼 예산은 빠듯했지만 뜻을 함께한 탈북민들의 후원과 재능기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 장면은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중국 현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했다. 북한인권의 현실을 알리는 영화인만큼 출연 배우들 역시 탈북민으로 구성됐다. 다만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주인공 역은 한국배우 이자은, 장영환이 맡아 열연했다.


지난 10월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허영철 감독은 지금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북한의 인권·종교 탄압의 그 참혹한 현실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려야 한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영화 <도토리>에서 북한 감옥을 재현한 감옥 세트장도 이곳 김포에 만들어졌다.



생존을 위한 ‘탈북’

북한인권영화 <도토리>를 제작한 허영철 감독은 북한 혜산 출신으로 마흔 살이 되던 해인 지난 2002년 가족과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탈북 계획이 전혀 없던 ‘탈북민’이었다. 군 복무 10년을 마치고 지방의 중앙기업에서 일하던 시절, 가까웠던 상사가 반(反)체제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의 삶 역시 송두리째 흔들렸다. 예심과 구류를 거치면서 다시 잡혀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는 그다. “다시는 지옥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새벽에 국경을 넘어 탈출을 감행했지만 첫 번째 탈북은 성공하지 못했다.


“중국 변방을 돌다가 잡혀서 다시 북한으로 끌려갔어요. 호송 도중에도 맞았고, 이틀 만에 또 잡히며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죠.”


그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엔 죽음을 목전에 둔 기억이 배어 있었다. 호송 도중 보위부와 몸싸움까지 벌였던 그였기에 ‘탈북’은 이제 선택이 아닌 목숨을 건 마지막 승부였다.


도망치는 길은 끝없이 미끄러웠다. 눈발이 퍼붓던 밤, 아내와 흩어졌다가 다시 만난 건 눈 위에 찍힌 발자국 덕분이었다. 그렇게 살기 위한 본능은 그를 자유의 땅 대한민국까지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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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의 작업실에서 만난 허영철 영화감독은 "여가시간을 즐기는 남북한의 문화에도 차이가 있다"며 "지금도 탈북민들이 모일 때면 

악기 연주와 노래로 흥을 돋운다"고 말했다. 허 감독 역시 아코디언은 물론 섹소폰까지 두루 섭렵했다. 이날 허 감독은 즉석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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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토리>의 촬영현장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다

처음에는 이념이나 정치적 이유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탈출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 정착한 뒤 북한 인권의 실상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직 저 휴전선 넘어 북녘 땅에서는 정치·이념·종교 등을 이유로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탈북 도중 잡히거나 중국 등 제3국에서 체포돼 강제 송환(북송)됐을 때 받게 되는 처벌이나 고문의 실체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중국 내 억류된 탈북민들의 북송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 뜨거운 불씨가 타올랐다. 북송될 경우 고문, 강제노동, 성폭력, 처형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뒤따른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중국 정부의 태도는 강경했다. “북송을 멈춰달라”는 간절한 외침만으로는 중국 정부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허 감독은 그 생각 하나로 카메라를 들었다. 강제 북송과 북한 인권 유린의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 <도토리>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영화 <도토리>는 북한과 중국, 몽골 국경에서 벌어지는 탈북 여성 인신매매와 폭력의 실상을 토대로 한 ‘증언형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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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토리>의 촬영현장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다 가장 많이 죽는 곳이 몽골 국경 근처예요. 그 참상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 영화가 전 세계에 알려져 북한 동포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북한 내 종교 탄압, 강제노동, 인신매매, 폭력 등의 현실을 다룬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의 30% 정도만 재현했을 뿐인데도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그 현실이 얼마나 참혹할지는 차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기록으로 남기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다시금 환기시키겠다는 그의 다짐은 결국 영화 <도토리>로 이어졌고, 지난해 미국 내 시사회에서 마주한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미국 내 한인 사회와 인권 단체가 시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시사회는 ‘중국의 탈북민 강제 북송 중단’과 ‘북한 인권 문제 국제 공론화’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뉴욕 시사회 자리에서 뉴저지주 하원 37선거구 로버트 어스(Robert Auth) 의원은 허영철 감독, 총괄 프로듀서 이동현, <도토리> 출연진 전원에게 뉴저지주 상·하원이 공동 결의한 ‘인권상’을 수여했다. 영화 <도토리>가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와 북한의 인권 실태를 알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같은 이유로 2024년 5월 19일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한인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워싱턴 지역 시사회 이후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가 허영철 감독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국내 첫 대규모 공개는 2024년 5월 1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였다. 관객들은 “탈북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하며, 이를 단순한 연기가 아닌 ‘증언의 기록물’로 받아들였다.



“기술의 격차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만

문화 격차는 20년이 지나도 남아요. 말투 하나, 인사법 하나가 다릅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통일 후엔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이러한 문화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탈북민을 ‘통일 교관’으로 세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영화는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심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허영철 감독은 특히 대한민국 청년들이 북한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허울뿐인 이상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실수를 막기 위해 탈북민을 인권과 통일 교육의 교관으로 세워 청년들과 직접 대화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허 감독은 통일 문제에 대해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일부 사회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통일은 내 집 마련, 분단은 월세”

한국 내 탈북민은 3만~4만 명에 이른다. 허 감독의 말을 빌리면 통일은 단순한 이상이 아닌 ‘삶의 현실’로 바라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통일을 막는 가장 큰 벽은 ‘이념’보다 ‘문화’라고 지적한다.


“기술의 격차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만 문화 격차는 20년이 지나도 남아요. 말투 하나, 인사법 하나가 다릅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통일 후엔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이러한 문화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탈북민을 ‘통일 교관’으로 세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탈북민들이야말로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군사 정보, 지역 문화, 생활 습관까지 몸으로 알고 있죠. 이들을 통해 남한 사회가 북한을 배운다면 통일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허 감독은 통일 비용을 두려워하는 사회 인식에도 일침을 가했다.


“통일은 내 집 마련이고, 분단은 월세 집이에요. 월세는 계속 돈이 새어나가지만 내 집 마련은 처음엔 힘들어도 결국 내 것이 되죠.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허 감독의 비유는 명쾌했다. 통일을 이상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풀어낸 그의 시선이 돋보였다.


그는 또 정치 지도자들이 방향만 제대로 잡는다면 남한의 돈 한 푼 쓰지 않고도 북한을 부흥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북한에는 도로와 철도, 항만을 새로 지어야 합니다. 그게 곧 기회예요. 투자자들이 몰려들 겁니다. 히토류 같은 자원도 세계 1위 수준이니 북한은 사실상 돈방석 위에 앉은 나라입니다.”


허 감독이 그리는 통일 이후의 한반도는 ‘경제 강국’이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우리는 프랑스와 영국을 넘어섭니다. 미국, 중국 다음의 강국이 될 거예요. 일본이 통일 한국을 원치 않는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끝으로 그는 통일은 이상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며 남과 북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국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인권을 걱정하고 통일 한국의 미래를 말하는 그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를 포함한 탈북민들은 북한과 남한 사회를 모두 경험한 이들이다. 휴전선 넘어 북쪽은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며, 켜켜이 쌓인 추억이 있는 곳이다. 생존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 고향 땅을 떠나온 그들이지만 통일의 염원은 어느 누구보다 큰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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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철 영화감독이 북한인권영화 <도토리>의 제작 배경 및 과정을 설명하며,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 한국은 어느 누구의 바람도, 반쪽짜리 소원도 아닌 우리 모두의 염원이 돼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부르던 노래가 있지 않았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 통일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면 먼저는 북한 인권 유린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다시금 각인시키고, 우리 또한 통일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선행돼야할 것이다.


영화 <도토리>를 말하다

북한 인권 유린의 실상을 알린 영화 <도토리>. 허 감독은 ‘왜’ ‘굳이’ 영화의 제목을 ‘도토리’로 정했을까. 도토리는 남과 북에서 모두 친숙한 열매이지만 북한에서 도토리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고난의 행군’까지 80년 가까운 세월 속 굶주림과 결핍의 시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북한 민초들의 가슴에 맺힌 한(恨)을 이 작은 열매 ‘도토리’에 담은 것이다.


“같은 도토리라 해도 북한의 떫고 쓴맛과 남한의 건강식 이미지를 대비하고 싶었어요. 한 알의 도토리로 남북의 간극을 보여주는 거죠.”


<도토리> 러닝타임은 77분으로 촬영만 1년 반이 걸렸다. 처음에는 몽골 구간 즉 중·몽 국경의 사막 탈출 장면까지 담아 여정의 지도를 완성하려 했지만 현실의 벽은 예산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제작비는 탈북민 공동체가 십시일반으로 보탰다. 돈의 크기가 아니라 “이건 내 이야기”라는 마음의 크기가 모여 마침내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


허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다큐영화 <뿌리>로 시작한다. 6·25전쟁 시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기억을 ‘아들의 시선’으로 더듬은 작품이다. 그 뒤로도 그는 북한의 선전가(歌)와 일상 풍경을 역설적으로 비트는 각본들을 써 왔다. 때로 코미디·액션의 형식을 빌려오지만 중심은 언제나 인권에 있다.


“남한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남한 감독이 더 잘합니다. 저는 제가 체험한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찍습니다. 결핍, 통제 그리고 작은 존엄의 발현. 그것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는 묘한 쓸쓸함도 묻어난다. 국내 방송사 보도는 이어졌지만 정작 관련 부처의 관심은 미치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는 여전히 영화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 이어가려 한다. 더불어 영화 <도토리>는 곧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될 예정이다.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영화들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분단의 경계를 넘어 통일 한국의 문화적 간극을 메우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이미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크린 위에 조용히 통일의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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