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기획 사람과 도심의 소통 ‘서울로7017’을 걷는다
사람과 도심의 소통
‘서울로7017’을 걷는다
뉴욕에는 ‘하이라인 파크’가 있다. 이곳은 도심의 오래된 철도였다. 운송수단의 발달로 철도가 제 기능을 상실해가면서 1980년대 폐쇄됐고 20년간 방치됐다. 그러다 공사를 거쳐 지난 2009년에 공중정원으로 재탄생됐다. 현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4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뉴욕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서울에도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한 곳이 있다. 바로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사람 길로 재탄생한 ‘서울로7017’이다.
글 장수경 사진 천지일보DB
경제성장 핵심인 고가도로가 공원으로
1970년 8월 15일에 개통한 서울역 고가도로는 중구 남대문로5가~만리동 사이를 잇는 도로시설물이다. 1970년대 조성된 후 일 평균 4만 6000대 이상의 차량이 이용했다.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해 서울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압도하는 위엄 가득한 존재였고, 고도 경제성장의 핵심이었다. 또한 신호대기 없이 지나갈 수 있는 획기적인 형태의 길이었다.
하지만 고가도로가 제 기능을 잃어가는 것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지, 관리 비용이 많이 들었다. 또 서울역 고가도로는 2006년 도로 점검에서 안전도 등급 D를 받으면서 ‘잔존 수명이 2~3년 남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2015년 말까지 서울역 앞 교차로와 만리재로 사이에 길이 410m의 4차선 고가도로를 새로 만든 후, 그 즉시 기존 고가를 철거하기로 계획한다. 그러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처럼 만들기로 방향을 변경한다. 고가도로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의미다.
위) 2017년 ‘서울로 7017’ 개장 전 전경
아래) 서울역 고가도로 연장 준공(1975년) (출처: 아카이브서울)
1984년 당시 숭례문 방향에서 서울역 일대를 바라본 모습이다. 중앙에 남대문로5가~만리동 사이를
잇는 서울역고가도로(현 서울로 7017)가 보인다. (출처: 아카이브서울)
여기에는 역사적 가치와 가능성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취지가 담겨 있다. 공원 이름인 ‘서울로 7017’에서 찾아볼 수 있다. 7017의 ‘70’은 서울역 고가가 만들어진 1970년을 뜻하고, ‘17’은 공원화 사업이 완료될 2017년과 17개의 사람길, 고가차도의 높이인 17m의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로써 2015년 12월 13일 0시에 자동차가 다니는 고가도로는 폐쇄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자동차 아닌 ‘사람길’
‘재생’이라는 말은 낡고 오래된 것을 버리지 않고 다시 가공해서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도시재생’이라는 말은 낡은 도시를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도록 재생해서 만든 도시를 말한다.
봄꽃 핀 ‘서울로 7017’
해외에서는 도시재생을 실천적인 사업과 연계해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커뮤니티 운동과 중심시가지 활성화 사업이 연계돼 있고, 일본은 마을 만들기 운동차원의 사업이 연계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가 ‘하늘공원’으로 탈바꿈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의선 철도 폐선부지는 녹색 선형 공원으로 조성한 ‘경의선숲길’으로 바뀌어 시민들을 반긴다. 허름하던 공간이 이제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거듭난 것이다.이처럼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재탄생한 ‘서울로7017’도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가 다녔던 낡고 노후화된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이 찾는 사람의 발길이 닿는 ‘사람길’로 거듭난 것
이다.
이곳에 처음 사람의 발길이 닿은 것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서울역 고가도로 개통식에 참석해 테이프 커팅식을 했을 때다. 그로부터 45년 후, 이곳은 완전히 사람을 위한 길로 거듭났다.
2017년 ‘서울로 7017’ 개장 당시 모습
특히 서울로는 만리재, 청파동, 서울광장, 연세로, 남대문을 이은 보행친화도시로 안심하고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곳곳에는 수만 그루의 꽃나무가 사계절의 옷을 입고 시민을 맞이한다.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대형 화분이 촘촘히 심겨져 생명이 피어났다.
경치가 좋은 3곳은 전망 발코니(balcony)로 꾸며졌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이 되면 넓게 퍼진 노을빛이 보이기도 한다. 곳곳에는 피아노가 있어 오가는 이들이 잠시 여유를 즐긴다.
낙후됐던 서울역 주변 ‘핫플레이스’로
도시재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사람’이다. 경제적 발전만을 위한 도시재생은 결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특히 서울역은 기차, 버스 이용객이 많고 주변에 회사와 남대문 시장도 있어 하루에 90만 명이 이곳을 오간다. ‘서울로 7017’는 서울역과 만리재로, 남대문 등 주변 상권을 이어주고 있다.
동시에 서울시는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을 통해 ‘서울로 7017’ 주변에 다양한 앵커시설을 설립했다. 2019년 11월 28일 개관한 8개 앵커시설에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인 ‘중림창고’, 문화예술공간 ‘은행나무집’, 서울역이 한눈에 조망되는 마을카페 ‘청파언덕집’, 공유부엌과 공유서가가 있는 ‘감나무집’ 등이다. 이 외에도 봉제패션산업 활성화를 위한 민관협력 거점공간인 ‘코워킹팩토리’, 주민 바리스타들이 선사하는 스페셜티 마을카페 ‘계단집’, 쿠킹스튜디오와 음식 관련 교육·체험 공간인 ‘검벽돌집’ 등이 있다.
봄꽃 핀 ‘서울로 7017’
앵커시설은 주민 공동이용 시설을 확충하는 동시에 문화생활에서 소외된 지역에 문화거점 역할을 하도록 구성됐다. 일자리와 수익 창출을 통해 지속 가능한 기반이자, 주민이 주도해서 자립모델을 만들어 나간다는 목표이다. 쉽게 말해 ‘재생’을 넘어 ‘자생’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고도의 산업화로 인해 빠르게 발전했다. 늘어나는 도시와 공장, 각종 시설물. 이는 빠름과 편안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대기오염, 토양오염 등 각종 환경문제가 생겨났다. 보이는 것과 달리 도시는 낡고 노후화되고 있었다. 팍팍한 도심 속에서 앞만 보고 내달리던 사람들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기 시작했다. 인류와 도시가 공존하는 시대, 삶을 돌이켜 보며 여유를 즐기는 시대. 그렇다. 사람들은 이제야 자연 만물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무조건적인 도시개발이 해답이 아니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시대는 변한다.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공존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사람도, 자연 만물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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