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호 기획 중국의 단약과 화약의 제조 역사
중국의 단약과 화약의
제조 역사
글, 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이사장
화전을사용한전투
‘화약’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벨상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과 고려시대의 최무선을 생각한다. 우리가 노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가 과거 흑색화약(黑色火藥)에서 폭발력이 엄청나게 큰 무연화약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하였고, 이 화약사업으로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으며 그의 유산으로 노벨상을 만들었다는 상식이 우리들의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약이 처음 군사용으로 제조되어 사용한 것은 노벨시대보다 600년이나 앞서 중국 송(宋: 960~1279)나라 때이며 13세기 원(元)나라 때 중국의 화약 기술이 아랍과 유럽에 전래되었다.
초기의 화약은 오늘날의 흑색화약과 유사한 조성물이었다. 초석(礎石, 질산칼륨), 유황(硫黃), 숯(木炭, 목탄)의 혼합물이었던 이 조성물이 흑색화약의 원조가 되었으며, 처음 이러한 조성물이 만들어진 후 1000년이 넘도록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화약은 중국 춘추전국시대(BC 770~BC 403)의 노자(老子)의 <도덕경>을 근간으로 한 도교(道敎)의 연단술사(煉丹術士)들이 불로장생의 묘약인 단약(丹藥)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는데 진시황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당나라시대에 연단술사들은 유황과 초석(질산칼륨), 목탄 등을 혼합하여 불로장생 단약을 만들고자 하였는데 이 재료들은 한(漢, BC 202~AD 220)나라 때 발간된 <신농목초경>에서 중요한 약재로 기술하고 있다.
이 당시 연단술자나 의술자들이 이 책들에 있는 지금의 흑색화약 기초 재료들을 여러모로 단약을 만드는 데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연단술사들은 불로장생의 단약은 발명하지 못하였지만 수백 년을 거처 여러 재료의 화학적 특성과 제조 기술을 축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단약의 실험과정에서 폭발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 가지 약재가 혼합된 물질을 병을 치료하는 약물로 여겨 ‘불이 붙는 약’이라는 의미로 화약(火藥)이라 불렀다. 화약이란 단어가 문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송나라 때 만든 도교의 경전인 <도장> 에 단약을 제조하는 내용 중 화약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단약을 만드는 연감술사들은 복화유황법으로 단약을 제조하는 과정 중 유황, 초석, 목탄을 적당한 비율로 혼합하면 폭발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화약 제조 기술이 군수물품을 제조하는 장인의 손에 넘겨졌으며 그들은 원료 배합에 관해 여러 번의 실험을 거쳤다. 그 결과 몇 가지 원료의 배합 비율을 바꾸어 밀봉된 상태의 화약에 불을 붙이면 폭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화약 제조 기술이 송나라 때에 이르러 화약은 통제 가능한 실용적인 군사용 폭발물이 되었다.
화약통을장착한 화전
당나라단약로
그러나 중국의 송나라 이전의 역사기록에 화약을 언급한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화약을 무기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사실인데 중국인 덩인커는 그의 저서 <중국고대발명>에서 단약의 특성만 갖고 화약의 발명을 당나라 초기(630~650년)로 소급하여 과장되게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화약역사>를 쓴 민병만 씨는 그의 저서에서 “송나라 노진이 쓴 <구국지>에 당나라 애제 천우 초(904~906년)에 정번이 예장을 공격할 때 ‘발기비화(發起飛火)’를 사용해 예장의 용사문을 소각하였다는 기사가 있어 실제 화약을 전쟁무기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화(飛火)’는 화약이고 ‘발기(勃起)’는 투석기나 쇠뇌로서 이 ‘비화발기’를 화약병기로 간주되고 있다. 아마도 화살 끝에 연소제를 발라 발사하는 일종의 화전(火箭)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하였다.
실제 화약은 중국 송(宋) 시대에 화포용 화약, 독약을 넣은 연막탄용 화약, 철제 파편이 들어간 화약 등 화약 제조법이 크게 발달하여 처음 군사용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044년에 편찬된 증공량의 군사병법서인 <무경총요(武經總要)>에서는 화약 무기의 제조 및 배합 방법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송대에 화약의 성능이 날로 높아지면서 이를 이용한 무기들이 대량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러한 화약 병기의 출현은 군사적으로 커다란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당시 대표적인 병기로는 강력한 폭발성 화기인 벽력포, 무쇠로 덮개를 만든 진천뢰 등이 있었다. 또한 개인 화기로 사용할 수 있는 화통(火筒)으로는 대나무 통에 화약을 장전해서 발사할 수 있었던 돌화창이 있었다. 화약과 화포 기술은 13세기 몽골의 원(元)나라 때 서아시아로 군대를 원정을 보내면서 아랍 세계에 전파되었고 아랍인에 의하여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몽고의 군대가 아랍지역에 최초로 화약병기를 사용한 것은 1219년 징기스칸에 의한 1차서방 원정 당시 중앙아시아 지방의 호라즘 왕국을 공격 때였다. 그 후 1221년 넷사(Nessa)를 공격할 때는 화전, 화포 등 본격적으로 화약병기를 사용하였으며, 1258년 원나라 군대가 바그다드를 침공할 때 철병이란 진천뢰를 사용하였다. 화약무기를 주로 사용한 원나라 군대의 아랍 정벌 때문에 아랍권이 본격적으로 화약병기와 접촉하게 되었다.
아랍-이슬람 세계에서는 몽고군의 위력적인 화약병기를 알고 난 이후 중국 상인들로부터 화약의 제조방법을 알아내어 중국의 각종 화기를 모방하여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시리아의 병술가 Hasan al-Rammah al-Ahdab가 1285~1295년 사이에 저술한 아랍어 병서 <기마술과 병기>에는 중국 화약의 성분과 화기 제조방법이 구체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화약에 대한 정보를 아랍으로부터 전래받은 유럽은 화약과 화포를 14세기 중엽에 처음으로 전쟁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고려가 중국의 화약과 화약병기에 대한 정보를 송나라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체험하게 된 것은 1231년부터 30년간에 걸친 여섯 차례의 몽고와의 항전 때이다. 그 당시 몽고군은 이미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같은 무렵 아랍과 유럽을 쳐들어간 몽고군이 이미 화약무기를 사용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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