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호 기획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문화공간

2023.04.20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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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문화공간 

재건축과 재개발로 형성된

마임강변의 미술관·박물관들


케이크 모양의 현대미술관 _ 한스 홀라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 수공예박물관 _ 리챠드 마이어

우편박물관 _ 귄터 베니쉬


글·사진 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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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의 현대미술관 건축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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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홀라인이 디자인한 케이크 모양의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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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중앙홀 연결통로

 

 

카메라 렌즈는 모든 피사체를 맞이하는 통로이다. 그 통로가 아무리 과학적이고 정확해도 인간의 시력만큼은 따라갈 수 없다. 물론 이때의 시력은 건강함을 전제했을 때의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마음의 호기심이 더 광막을 앞서갈 때가 있다. 마음이 진정성을 잃고 헤맬 때 렌즈는 자칫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육안보다 심안이 더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건축사진 촬영에 있어 이런 심상의 변화와 상관없이 이변이 생길 때도 더러 있다.


마인강 북쪽 박물관이 아닌 또 하나의 미술관이 있다. 구 도시의 도심 뢰머 광장과 돔 성당을 중심으로 몇 개의 미술관 중 하나인 현대미술관. 사람들은 일명 ‘케이크 조각’이라고도 한다. 1983년 오스트리아의 한스 홀라인이 디자인으로 개관하였지만 이미 그의 명성은 독일의 뭔센그라드 바흐 시립미술관에서 귀에 익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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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에서 바라본 중앙 연결통로



외부가 서로 다른 세 면은 하나하나가 커다란 조각품을 연상하게 한다. 붉은색의 재료 사용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돌출하게한 부분, 아치형의 수직 창문은 건물을 예사롭지 않게 해준다.


세 면 자체가 서로 다른 통로이지만 높고 낮은 계단으로 연결하여, 어느 미로에 들어간 듯하나 극적인 내부공간의 분위기에 몰입하였다가 다시 통로를 만나면서 이어진다.


이때 사진작가는 실제 찍는 것과 찍히는 것이 서로 다름을 체험하게 된다. 눈으로 쉽게 느끼게 해주었지만, 찍히는 피사체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잡혀 들어오고 있다. 내부공간의 일정치 못함이 그 원인이겠지만 말이다. 이때의 원인은 와이드렌즈 사용도 한몫 가세한다.


이 모던한 미술관은 자연광과 인공광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천장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강인함은 내부공간의 구석구석을 밝게 해준다. 공간과 공간의 이어짐이 이런 풍부한 빛을 들이킴으로 해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애초에 건물 대지의 특수성 때문에 삼각형의 ‘케이크 조각’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또 ‘케이크’라 명명하지만 그 특이한 공간 때문에 렌즈의 변화에 숙달되어 본다.


고통은 물리적 아픔이 따른다. 그러나 아픔에도 행복이 따를 때가 있다고 말한다면 어폐가 있을까. 찌는 더위에도 카메라라는 형틀을 갖추고 다니는 내 일은 행복 자체이다. 건축이 가진 형태미를 찾아 지구의 반 이상을 다니는 내게 고통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이다. 이때 나를 붙잡는 고고한 여인들이 바로 훌륭한 건축물의 형태미가 아닐까 싶다.


프랑크푸르트 도시 중심에는 마인 강이 흐르고 있다. 본디 강을 끼고 문명이 형성되었다지만, 강을 끼고 박물관이 형성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강변을 따라 흐르는 물과 함께 인간의 볼거리를 집대성한 나라. 독일은 그런 문화의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흔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각종 박물관이다. 


마인 강 남쪽 귄터 베니쉬 우편박물관은 뮌헨 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한 귄터 베니쉬의 작품이다. 1990년 이 박물관이 자리를 잡기 위해 오래된 빌라의 주인들은 서슴없이 그곳을 내주었다. 샤우마인카이 53번지. 1970년부터 새로운 문화공간을 꾸미기 위해 이곳에 재건축과 재개발이 조용하게 시작된 것이다.


오래된 나무와 오래된 정원, 그곳에서 노는 새들의 안식처를 위해 조용조용 사람들은 지하의 면적을 소리 없이 넓혀 갔다. 강을 바라보며 노후를 평화롭게 보내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빌라의 현 상태를 활용한 것이다. 빌라의 정원은 옥외 전시장으로 활용했고, 정원의 기존 잔디밭과 연결한 유리 구조물들은 빛과 채광을 지하와 밖의 경계를 오가는 데 무리 없이 해주었다. 이런 건물과 자연의 딱딱한 경계감을 무너뜨리기 위해 귄터 베니쉬는 ‘열린 공간’의 건축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박물관 역시 기하학적인 형태로서 해체주의적 경향을 보인다고 건축학자들은 말한다. 매우 절제되고 철물에 의한 디테일과 가구 디자인의 조화를 꾀하는 그 철저한 정신,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눈길을 끊임없이 유도한다.


철판 경사를 따라 입구로 들어가면 기념품 코너와 커피집이 있고, 경사진 유리 구조와 채광벽들이 2층 전시장으로 연결되면서 절정을 이룬다. 옥외의 잔디 정원과 수목들은 지하 전시장의 오랜 머무름을 회포라도 풀 듯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 건물의 특징이라면 외부로부터 빛을 받아들임에 있어 너무나 자연스레 모두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한몫 더 관객으로서 감탄하겠다면, 백남준의 <돈키호테> 작품이 건물의 한 형태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유히 역사를 물밑으로 침잠시키면서 흐르는 강. 강변으로 가면 시민들은 추억을 상기한다. 오스월드 웅거스에게 자신들의 주거를 개조하게 한 후 1981년 건축박물관이 또 들어섰다.


‘집 속의 집’이라는 건축박물관의 이미지를 깨우치게 해주었다. 공간과 공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이런 조형미는 사람들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경우 내부공간 자체가 내부에 있는 외부 공간으로 착각하게끔 만들었다. 영화박물관 역시 기존의 빌라를 개조하여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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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미술관 외부 공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리챠드 마이어의 수공예 박물관

박물관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인간의 습관. 인간의 생명은 크게 생각하면서 작은 조류의 생명은 우습게 생각하는 인간들. 크고 작다는 것에 연연함을 파기하는 수공예박물관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소중하다. 샤우마인카이(Schaumainkai) 강변 남쪽. 옛 건물을 잘 개조한 박물관 거리. 아니 강변 1㎞가 박물관 지구로 변했다. 우리에겐 수몰지구라는 것은 있어도 박물관 지구는 없다. 그런 그곳에 빌라는 예전의 모습을 바꾸어 작은 박물관으로 태어난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교훈을 알게 해준다.


수공예박물관이 위치한 샤우마인카이 53번지 도로변은 과거에 고급빌라가 산재해 있던 주거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마인 강변을 따라 시민들의 볼거리를 만들고자 프랑크푸르트 시당국에서 그 빌라들을 모두 사들여 지금의 수공예박물관을 건립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별달리 입지 않았던 마인 강변 남쪽 지역 일대에는 고풍스러운 별장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 측에서는 자국의 박물관을 홍보하면서 종종 프랑스 파리의 경우와 비교하며 설명한다. 파리에서는 한 지역을 완전히 철거한 후 그 자리에 거대한 퐁피두센터를 만들었다 수공예미술관 외부 공간는 것이다. 현재 퐁피두센터는 한 건물 안에 다섯 개의 박물관이 들어서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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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미술관 외부 공간


그러나 독일 박물관의 경우 그렇게 거대한 규모로 짓기보다는 기능이 분리된 개별 박물관을 고안해냈다. 마인 강변을 따라 지어졌던 모든 구 빌라 건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대신 보완 개조하여 아담한 소규모 형태의 박물관 지구로 변모시켰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정신을 밀고 나간 것이다. 관람객들은 그런 작고 아담한 규모에서 더욱 많은 친근감과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웅거스는 외부 형태를 그대로 두고 집 속에 다시 집 하나를 짓는 방식을 사용한 반면, 수공예박물관을 설계한 리챠드 마이어는 기존의 별장을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새로운 박물관을 지었다.


리챠드 마이어(Richard Meier, 1979~1984)는 기존 건물에 새 건물을 증축한다는 취지와 더불어 주변에 나무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자연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설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실내를 단순하게 디자인하면 자칫 무미 건조해지고, 반대로 화려하게 설계하자니 정작 중요한 전시품들이 돋보이지 않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리챠드 마이어는 수공예박물관 설계에서 크고 작은 공간을 번갈아 배치하여 실내 공간의 단조로움을 피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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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미술관 외부 공간



이는 의외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외부 형태에서 느껴지는 단백함과는 다르게 내부공간으로 향하는 통로들은 공간적인 감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기존 빌라와 연결되는 길은 투명한 유리로 처리하여 옛것과 현대건물이 만나는 접점을 자연스럽게 처리하였다.


전시장은 크게 세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전시 내용에 따라 공간의 크기와 프레임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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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박물관 입구


귄터 베니쉬의 우편박물관

이 우편박물관(Germany Postal Museum)은 프랑크푸르트 도심 중심을 흐르는 암 마인 강변 남측에 위치하고 있다. 강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는 모더니즘 스타일의 해체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프랑크푸르트시가 마인 강변에 미술관 박물관을 형성한다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문화 정책의 일환이다. 양옆에는 스터델미술관, 독일영화박물관들이 함께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데 1982년 국제 현상 설계 경기에서 뮌헨올림픽 경기장을 설계한 독일 건축가 귄터 베니쉬(Gunter Behnisch)가 1990년 당선되어 기존의 빌라 건물과 함께 나란히 디자인하였다.


샤우마인카이 53번지 도로변에는 과거 오래된 빌라들이 산재해 있는 곳인데 1970년 후반부터 박물관 거리로 탈바꿈을 하여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


기존의 오래된 빌라와 수목들을 보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상의 면적을 최소화하고 지하를 가급적 많이 활용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지하층은 기존의 빌라와 연결되어 있고 빌라의 정원은 옥외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정원의 잔디밭과 연결된 것과 같이 유리의 구조물들은 건물의 지하 전시실의 빛과 채광의 유입으로 항상 밝은 실내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귄터 베니쉬는 그가 평소 주장하고 있는 열린공간(open architecture)의 철학을 바탕으로 이 작품 역시 기하학적인 형태에 독일에서의 새로운 해체주의 형식의 경향을 선보인 작품이라고 느낀다. 슈투트가르트 대학 안에 있는 태양열연구소(1987)에서 보여준 구성주의 작품보다는 매우 절제되고 철물에 의한 디테일과 가구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철저한 정신을 볼 수 있다. 1층 건물의 정면에는 지상으로부터 경사진 철판으로 된 바닥을 통해 정문 입구로 들어가게 되면서 안내실과 기념품 코너, 소규모 커피숍이 있고 경사진 유리 구조와 채광 벽들이 지하 전시장과 2층으로 연결되면서 내부공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내부 중심 공간에 매달려 있는 원형 계단 그리고 유리를 통해 보이는 옥외 잔디 정원과 수목들이 사람의 눈을 정원 쪽으로 유도하고 있다.


지하층의 전시장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각종 전시실로 배치해 놓고 있는데 기존 빌라(현재 도서관)와 연결시켜 지상에서의 연결보다는 내부 지하와 연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우편박물관 역시 외부로부터의 자연스러운 빛을 받아들이는 설계 방법이다. 현대 건축에서 독특한 방법이며 뛰어난 작품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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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박물관 내부 공간
 

전체 전시공간은 4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반원형 공간과 연속된 수직 공간으로 인해 연속된 실내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층에서 반원형 지하 전시실을 내려다보게 되어 있어서 전체 공간이 하나의 공간처럼 보여주고 있다.


특히 건물 입구에 있는 조각작품은 우리나라의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돈키호테> 작품으로 건물의 형태와 잘 조화돼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독일 우편박물관의 건립과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면 우편과 통신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역사적으로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는 박물관이다. 독일은 1872년 당시 우편총감이었던 하인리히 본 스테판의 제안으로 ‘계획과 모형의 전시실’을 설치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우편박물관 건립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후 우편박물관 내부 공간임에 제국우편박물관으로까지 발전시켰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화의 큰 손실을 맞게 되고 일부 수집품들만이 프랑크푸르트로 옮겨져 1956년에 우편박물관으로 재건되었다. 


최근에 이르러 전란으로 손실된 개관 초기 소장품들의 공백을 메우고 근간의 자료를 보충하였으며, 현대적 개념을 적용한 전시공간으로 변모시켜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전시관은 지상층에서 도서관으로 사용되는 구관과 현대적인 외형의 신관이 분리되어 있으나 지하층에서는 두 건물이 연결되어 있어 기능 면으로서는 전시 면적의 확충과 실제적으로 융화의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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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박물관 외부



관람의 기본 동선은 현관홀, 지하층, 2층, 중층, 옥탑층, 1층의 순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자유동선의 관람이 제한받지 않는 구성이고 전시내용을 14개의 소테마로 분류하고 있다. 전시물 외에 전시공간 구성의 기본요소인 영상실과 휴식공간 및 판매 코너를 1층에 배치하고 있으며 지하에 문화센터와 세미나실이 위치하고 있어 소규모 전시관임에도 기능에 관한 전반적인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2층에서 3층으로 이동하는 동선상의 중층 전시장에는 고정된 망원경으로 강 건너편에 위치한 건물의 벽면의 오브제를 보여주는 연출과 옥상에 배치한 전시물의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전시물의 디스플레이만으로 설명이 부족한 경우에는 모니터를 설치하고 영상미디어를 동원한 추가 정보의 제공으로 내용 전달의 충실을 기하고 있다. 기초 원리의 이해를 위하여 설치된 작동전시물의 구성은 단순 이론을 직접 조작하여 체험토록 하는 보편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 전시대의 간결함과 조작 기기의 견고함은 전문 설계자의 의도를 느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주변에 위치한 타 전시물과의 조화도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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