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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갈등에 지쳐가던

소년이 택한

‘ 요리’


영화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


글.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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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는 종교가 다른 아빠와 엄마 사이에 태어난 12살 사춘기 소년 에이브가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영화다. 2019 선댄스 영화제 상영작이자 지난달 6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제5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 ‘새로운 맛의 발견’ 섹션에 상영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윌 바이어스’를 연기한 노아 슈나프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며 영화 속에선 그의 앳된 모습이 역력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에이브(노아 슈나프)는 아브라함, 에이브라함, 이브라힘, 아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에이브(Abe)’로 불리길 원한다. 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에이브는 팔레스타인 이슬람교 아빠와 이스라엘 유대교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15년 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에이브를 낳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집안 갈등에 지쳐 자식만은 종교 없이 크길 원한다. 하지만 조부모의 생각은 다르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중 하나를 고르라 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갈등은 시작된다. 에이브는 여름 방학 동안 두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상반된 문화를 체험한다. 이슬람교 ‘라마단 금식’을 수행하고, 유대인의 자녀 율법인 ‘바르 마츠바’도 보러 간다. 엄마는 종교란 복잡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하며, 아빠는 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며 에이브를 안심시킨다.

12살 에이브에게는 공부보다 둘 중 하나의 종교를 고르는 게 더 어려운 과제처럼 보인다. 아직 무엇을 선택하기에는 서툰 열두 살에게 가혹한 시련이다. 에이브는 음식 먹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은 요리다. 그는 자기 생일 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SNS에 올리며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SNS 친구들은 열띤 응원 혹은 냉정한 평가로 피드백을 해 준다. 뛰어난 미각과 요리 실력을 갖추었지만 정돈되지 않는 천재성과 열정을 알아봐 줄 스승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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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브루클린 플리마켓에 갔다가 브라질 셰프 ‘치코(세우 조제)’를 만나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맛을 잘 섞으면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식탁 앞에서 친해질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졌다. 모두에게 열린 식당을 만들고 싶어 최근 식당을 접고 공유 주방을 이용해 음식을 만든다. 그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셰프들과 의견을 나누고 새로운 퓨전 요리를 만드는 중이다. 그런 치코에게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은 에이브는 그곳에서 궂은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매일 설거지와 음식 쓰레기 버리는 일로 지쳐가던 에이브에게 치코는 깨끗이 씻고 정리하는 일이 요리의 기본임을 가르친다. 또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요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려준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요리가 달라짐을 몸소 일깨워준다. 에이브를 다르게 부르듯이 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문화권에 따라 조리 방식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랜 민족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에이브네 집안도 피해 갈 수 없다. 만나면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크게 싸우기 일쑤다. 사랑하는 사이지만 종교와 역사 앞에서는 편을 나누어 언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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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에이브는 드디어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치코에게 재료를 조화롭고 맛있게 섞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추수감사절에 집안의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 과연 자신처럼 다양한 뿌리의 음식으로 식탁을 차린 에이브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가족들은 얼마 가지 않아 말싸움을 시작하게 됐고 에이브는 무작정 집을 나가게 된다. 에이브가 집을 나간 후 칠면조가 다 타는 것도 모르던 가족들이 한참 동안 에이브를 찾아다니다가 집에 다시 돌아와 함께 에이브가 준비해뒀던 음식을 먹는다. 말 한마디 없는 식사였지만 오히려 그 전의 어떤 식사보다 화목했다.

치코와의 만남, 가족의 화해를 계기로 에이브는 ‘에이브라함, 아브라함, 이브라힘, 아비’ 등 다른 사람들이 정의내리는 자신이 아닌 그냥 ‘에이브’ 자신이 되기로 한다.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 간의 종교 갈등을 가족의 배경으로 다루면서 음식과 사랑의 힘 그리고 한 아이의 자기 정체성 확립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훈훈한 영화다. 영화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는 음식을 통해 가족이 되는 따스함과 집안의 종교 갈등으로 인해 사춘기 아이가 겪는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음식을 테마로 세계 각국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서울국제음식영화제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 영화다. 무엇보다 빠른 템포와 이국적인 음악, 음식들 때문에 오감만족, 경쾌함이 커진다. 단, 관람 내내 침이 꼴깍 넘어가고, 배가 너무 고프다는 괴로움만 빼면 말이다.